재미나게 강론 잘하시기로 소문난 한 신부님의 유학시절 체험담이다. 구두로 하신 말씀도 분명히 저작권이 있기에 강론 중 상당 부분을 발췌했음을 밝혀둔다.
한 번은 유학 신부들 모임이 있었단다. 반가운 마음에 술 한 잔 거나하게 하고 회포를 풀다가 오랜만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흥인 일명 ‘고스톱’을 벌이기로 했다. 그런데 자리를 펴고 모여 앉아 갑론을박하기를 두 시간여. 사연인즉슨, ‘교구’마다 고스톱의 룰(rule)이 달라서 공통의 룰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어느 교구에서는 ‘쇼당’이 두 패만 되는데, 다른 교구에서는 세 패, 네 패도 허용된다. 이 교구에서는 ‘쌍피’로 쳐주는 패가 저 교구에서는 아니다. ‘광’을 한 사람만 파는 교구도 있고 두 명이 동시에 ‘광’을 팔아도 되는 교구도 있다.
이런 저런 룰들을 협의하고 조정해서 합의를 보려니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격렬한 논란 끝에 마침내 모든 룰을 조정해 합의하고 나니 총 7명 중에 4명이 이 합의에 동의해서 한 자리에 모였고, 나머지 3명은 동의를 하지 않아 뒷자리로 물러앉았다.
여기서 교훈, ‘사회적 합의’는 매우 중요하고 존중해야 하며, 어떤 일이든 의견 조정이 필요하면 반드시 시시비비, 양보와 절충의 과정을 거쳐 합의를 도출하고 이에 동의를 해야 비로소 게임은 시작된다는 것.
고스톱은 포커 등 카드 게임과는 또 다르다. 카드 게임은 독식을 위해서 상대를 모두 눌러야 하고 좋은 패를 움켜쥐어야 하지만 고스톱은 때에 따라서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패를 ‘풀어야’ 한다.
즉, 이른바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고’를 외친 상대를 견제하면서 또 다른 상대에게 좋은 패를 흘려야 한다. 흔히 하수는 내 패만 보고 모든 상대를 적으로 삼음으로써 초대형 사고를 방치하지만 고수는 두루 정세를 살펴 손해를 최소화하는 법을 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교훈, 근시안적인 욕심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살기 위해서 때로는 버리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모든 것을 복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사회 문제로 지적되기까지 하는, 심하면 도박의 ‘경지’로까지 몰락하는 고스톱에서 다양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그 신부님의 통찰력에 탄복하면서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의 묵상거리를 발견한다.
고스톱을 통해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합의’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고스톱의 룰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합의’를 통해 가변적이지만 소정의 점수를 나면 ‘고’와 ‘스톱’을 외칠 수 있는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그 당위성까지 가변적이라면, 애당초 고스톱은 존재할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공동의 삶을 영위하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와 그에 대한 전폭적인 존중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절대로 타협하거나 다수결에 의한 합의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선사하신 구원의 은총이며, 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 백성의 소명이다. 당신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우리들의 정체성은 결코 우리가 합의한 일이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선물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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