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 32)
다들 그랬겠지만, 부제품을 받겠다는 청원서를 내고, 불안한 마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확신이나 표징이 있었으면 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하는 방법을 택했다. 성호를 긋고 눈을 감고 성경을 펼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표징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눈에 들어 온 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는 대목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64년부터 80년까지 일구월심으로 신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해 왔는데, 주님을 배반하다니? 이는 분명 신부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가?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일주간의 피정에 들어갔다.
피정집은 인스부르크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어느 수녀원, 1월이라 사방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적막강산처럼 고요했다. 혼자 산보를 하며 마을 쪽으로 오는데 아이들이 눈 장난을 하고 있었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그 애들과 함께 뒹굴며 한참을 놀았다.
돌아오는 길에 묵주를 꺼내 기도를 바치고자 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묵주가 없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 오고 머리가 아찔했다.
왜냐하면 묵주는 소신학교 1학년부터 간직한 묵주다. 이 묵주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도를 하면 신부가 될 것으로 믿어 왔는데, 이 순간 묵주가 없어지다니. 이는 또 다른 확실한 징표다. 신부가 되지 말라는.
하지만 넓은 눈밭에서 하얀 묵주를 어찌 찾으랴? 포기하는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났다. 피정집으로 돌아와 혹시나 하고 모든 곳을 다 뒤졌다. 뜻밖에도 어제 입었던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그 묵주가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확 쏟아졌다. 그리고 성경 대목을 다시 펼치니, 이번에는 베드로의 배반 대목 중에서 바로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래, 그렇다. 내가 흔들릴 때 주님께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니 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든든해지는 마음이었다. 잃어버린 묵주도 찾았지 않았는가?
지금, 27년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주님께서 나를 위해 언제나 기도를 해 주고 계심을 확신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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