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했더니 어느덧 바람 끝이 매서워졌다.
이맘때가 되면 다들 월동준비에 한창이다. 수도관을 동여매고 카펫을 꺼내고 커튼을 바꿔 달기도 하지만 월동준비의 핵심은 역시 ‘김장’이다. 몇 년 전만해도 50포기, 100포기씩 김장을 하는 주부들을 자주 보았는데 요즘 새댁들은 그렇지도 않다. 종류별로 묶어 파는 홈쇼핑 덕분인지, 김치냉장고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편해졌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서울 명동성당 뒤 사목센터 앞마당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김장’ 취재가 있었다. 카메라를 매고 올라가는 길목에 알싸한 김치냄새가 진동을 한다. 김장준비를 하면 아이들이 덩달아 신기해하는 것처럼, 취재가 아니라 놀러가는 기분이다.
셔터를 눌러대며 봉사단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렌즈 속에 일에 열중한 한 자매님이 눈에 띈다. 다가가 말을 걸어 이것 저것을 묻다가 오늘이 ‘환갑날’이란 것을 알아냈다. 한복을 차려입고 잔치를 준비해도 모자란데 단원들과 몇 백 포기의 배추에 속을 넣고 있는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자녀들과는 김장이 끝나고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면 된단다.
‘김장’이라는 두 글자는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 속재료에 정을 넣어 버무리고, 만든 김치 몇 포기는 으레 이웃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사먹는 김치는 나눠주기 힘들지만, 내가 만든 김치는 맛을 보라는 차원에서도 나눠주기 쉽다. 김장을 하며 친구들과 삶을 나누고 만든 김치를 통해서는 정을 나눈다. 김치를 먹으며 만들어준 그 사람을 떠올리고 내 김치를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하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봉사단원들의 하얀 앞치마에 묻은 김치물이 더욱 정겨워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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