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까짓 사랑.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읊어대던 사랑, 사랑, 사랑! 어쩜 그리도 유치하던가. 삼류유행가 가사 같고 허접스럽기 그지없던 사랑타령. 더구나 나를 구원해주신다 하지 않는가, 그 사랑이.
개신교 여학교를 다니며 매주 한 시간씩 듣던 성경수업에 대한 느낌이었습니다. 징글맞게도 허우적거렸던 사춘기 정수리를 지나면서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하느님. 그 하느님은 제게 그렇게 사랑타령이나 하는 ‘미지의 사내’로 다가왔습니다.
20대를 거치는 동안 노곤한 몸으로 지쳐 누우면 미지의 사내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내면에 차고 올랐던 꺼림칙한 그 무엇.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다던 그 맹세가 구겨진 파지처럼 제게 ‘헛되’보였던 20대 후반에야말로 세상의 헛된 몸짓들을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돌고 돌아온 그 길. 제 딴엔 기를 쓰고 돌아왔건만 이정표마다 남아있는 건 역시 그 ‘사랑타령’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를 방 한가운데 걸어놓고 아직도 건들대는 가슴에 콕콕 쑤셔 넣습니다. 그래도 사랑이라고. 고까짓 사랑이라고.
격정기를 보내는 한 소녀에게 미지의 사내였던 그분은 오래 전부터 저를 기다려 주셨음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외면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빙긋이 내려다보며 당신은 등잔불을 밝히고 앉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매일 그분을 기다립니다. 비록 그릇에 잠긴 기름이 부족하고 부실한 것일지라도 내 헐벗은 상처들이 밤마다 그분을 기다리므로. 하여 내 기다림의 시작은 미지의 그분에게서 오는 숨결이기에.
이현자(벨라뎃다·월간 둘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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