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수정리에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놈은 식성이 어찌나 좋은지 먹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쇠, 흙, 돌 심지어는 사람마저 널름널름 먹어치워 이 놈 앞에서는 사람 목숨도 파리나 모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요상한 것은 이놈이 권력 있고 잘사는 사람들 앞에서는 귀여운 강아지로 돌변하여 법도 무시하고 온갖 재롱을 떨지만, 못 살고 권력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법이라는 시퍼런 칼날을 휘두른다는 것입니다.
이 괴물의 이름은 ‘경제발전’입니다.
마산시 전체가 아니 세상 전체가 이 괴물을 자신들을 살려 줄 신인 양 숭배합니다.
이 놈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괴물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우리에게 마산시 사람들은 우리를 잡아먹는 괴물과 함께 살라고 우리를 잘 살게 해주는데 왜 난리를 치냐고 우리를 비방합니다.
이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우리는 놀라서 얼른 마산시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만, 놀랍게도 마산시가 이 괴물의 보호자요 양육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인 것은 이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살길을 마련하자는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3달 동안 피나는 싸움을 벌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강한 놈에게 대적할 방법이 없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같이 힘없고 약하고 권력도 없어 스스로를 지킬 수조차 없는 이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루어낼 때 이놈은 마치 거품마냥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있으나마나 한 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힘없고 약한 이들만이 이 괴물의 정체를 알고 우리를 도와줍니다.
권력있는 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괴물의 힘을 키워줄 뿐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비방을 받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싸워 이겨낼 수 있음을 이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세상 도처에 숨어있는 괴물과 함께 싸우는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진리와 사랑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장혜경 수녀(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 원장)
사진설명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인근 불법 조선소 건립을 반대하는 수도자들과 지역민 등이 지난 해 11월 14일 서울 법제처 정문에서 조선소 건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