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전 세계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경당 안에서 추기경들은 차례로 자기 자리에서 투표용지에 교황 후보의 이름을 적은 다음 네 겹으로 접어서 손끝에 쳐들어 들고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심판이 그려진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제대 앞에서 투표자는 모두가 듣게 큰 소리로 선서하였다.
“나는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불러 나의 투표가 하느님 대전에서 마땅히 선출되어야 할 분에게 갔음을 선서합니다.”
임석한 추기경의 3분의 2를 넘겨 득표한 라칭거 추기경이 로마의 주교, 베드로의 265대 후계자로 선출되었는데 본인이 선거결과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전체교회에 대한 최고통치권을 장악했고 또 행사했다. 추기경들은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베네딕토 16세 앞에 한 사람씩 나아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순명을 맹세하였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을 통치하는 교황을 뽑는 선거이자 사람의 숨은 생각마저 지켜보시는 하느님을 믿는 고위성직자들의 투표라서 저런 엄숙함이 있었겠다. 그렇지만 추기경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던 것은 자기들이 뽑는 교황이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위 ‘공동체 인격(persona communis)’이어서 그가 취할 모든 언행에 대해서 하느님 앞에 선거인인 자기도 책임을 지고, 그 결과는 세세대대로 가톨릭신자들의 영원한 구원과 멸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이었다.
‘공동체 인격’이란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인류 전체에 원죄로 상속되었고, 나자렛 사람 예수 한 명의 죽음이 역사상 저질러진 모든 죄를 대신 속죄하였고 전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법리적으로 풀이하는 신학용어다. 한 민족의 지도자나 국왕, 더구나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현대국가의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는 그 언행이 하느님과 인류역사 앞에서 그 민족이나 국가 전체를 대표하고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도 그 인물과 함께 책임과 영욕을 나눠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소 휘장 속에서 하느님과 만날 때
지난 15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한 대통령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또 이번 제17대 대통령 후보 12명 가운데 가톨릭신자들이 다수다.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 그리스도교가 그만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조짐이기도 하다. 하느님과 민족사 앞에서 며칠 후 내가 투표소 휘장 속에서 하느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그 엄숙한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헤아려 봄 직하다.
신앙인이니까 먼저 후보자의 정책을 견주어 보고 싶다.
첫째, 남북문제를 두고는 화해와 통일, 대북 식량원조를 추진하는 정책이 성당에서 즐겨 바치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에 가깝다.
둘째, 주님의 계명인 이웃사랑이 지역감정이나 집단이기심으로 변질될까 걱정되어 교회는 신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가르쳤다. 따라서 서민에 대한 복지정책과 부의 분배에 역점을 두는 편이 교회의 공동선 가르침에 더 어울린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다!’라거나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에 불과하다!’는 말마디는 교황님들의 문서에 나오는 구호다.
셋째, 내가 투표하는 후보가 하느님과 국제사회 앞에서 나를 대표한다면 후보의 도덕적 청렴은 중요한 지표가 되겠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도 있는 터에 오로지 경제 구호 하나만 보고 투표하기도 좀 그렇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세상을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으로 갈라놓고 보았다. 그리고 신앙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느 도성에 속하는지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사랑은 인생을 살아가는 중력(重力)이므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하느님의 도성에 속하는 이들은 ‘사회적 사랑’을 살고, 지상의 도성에 갇혀 사는 자들은 ‘사사로운 사랑’을 산다는 것이 교부의 얘기였다. 망국적 지역감정이나 누구에게 이데올로기를 덮어씌우는 짓은 지독히 사사로운 사랑이겠다.
십자가를 바라볼 적마다 굵은 통나무에 못질을 당해서 안으로 굽힐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팔에 시선이 간다. 그래서 투표지를 들고 기표소의 휘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거기서 내가 기표하는 순간에 내 손아귀에 쥔 변변치 않은 것을 지키겠다는 욕심 하나로 온갖 억지와 증오를 서슴지 않는 내 본심을 하느님께 들킬까 두렵다.
성염 (요한보스코·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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