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강의를 하다 이따금씩 던지는 물음이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셨습니까? 안 지키셨습니까?’ 흔히들 대답하기 힘들어 한다. 지키셨다고 하자니 안식일에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셨으니 문제다(마르 2, 24 3, 2 7, 5 등). 그렇다고 예수님이 법을 안 지키셨다고 하자니 마음에 걸린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시원스레 답을 주신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예수님은 온 세상이 사라질지라도 율법은 한 글자도 어김없이 다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마태 5, 18~19). 신구약 전체에서 이보다 더 율법을 강조하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얼핏 보면 모든 율법 조문이 글자 그대로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예수님 말씀 안에 답이 있다. “율법을 완성하러”의 그리스말은 본디 ‘채우다, 이루다’라는 뜻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려주신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예수님이 올바로 해석해 주신다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하나하나를 따른다고 하기보다는 그 글자 안에 실려 있는 법정신을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간음해서는 안된다”는 구절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마태 5, 27~28).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도 문제지만 마음은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율법의 참뜻을 근본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정신은 다음 두 구절에 명쾌하게 나타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 27).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 4ㄱ)
예수님은 유다교의 안식일 규정을 잘 지키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루카 4,16). 여기서 ‘늘 하시던 대로’는 안식일이 되면 빠짐없이 회당예배에 참여하셨다는 뜻이다.
오늘날 가톨릭 신자가 매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되면서 주말에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은 요즘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폴란드 크라카우에 머물 때 주일이면 모두가 ‘습관적으로’ 성당으로 향하는 신자들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었던 적이 있다. 폴란드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기에 더욱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주일은 축복의 날이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세 2, 3). 또한 주일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날이며 인간 해방의 날이다(탈출 20, 8~11 신명 5, 14~15).
미사를 시작하면서 “오늘 미사는 000를 위한 연미사, 생미사입니다”라고 미사지향을 사제가 불러주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본디 전례의 흐름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참여하는 신자와 주례자 모두에게 분심을 들게 하기 쉽다. 차분히 참회예절을 해야 할 바로 그 시점에서 사제가 전 신자에게 개인의 미사지향을 부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김포본당의 경우 지난 여름부터 성당 입구 게시판에 그날의 미사지향을 붙여 놓고 있다. 미사지향을 부르든 안 부르든 하느님께서는 다 아신다. 그분께 우리의 정성과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지 주례자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쁜 버릇, 잘못된 습관은 악습이라고 한다. 악습은 고치기가 힘들다. 담배를 끊으려다 못 끊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왜 그럴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밥 먹듯이 법을 어기고 있다. 모두가 악습에 물든 탓이다.
이제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버릇을 길렀으면 한다. 법망을 뚫고 나만 살겠다고 빠져나가는 악습을 버리고, 법정신에 따라 이웃을 배려하는 습관을 기르는 무자(戊子)년이 되기를 바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