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핑 베토벤’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음악으로 신의 영역을 뛰어넘고자 했던 악성 베토벤. 귀가 어두워지면서 성격도 괴팍해지고 자괴감에 빠져 고독했던 그를 도와 악보를 필사해주던 음대 우등생 안나 홀츠. ‘9번 합창교향곡’을 초연하고자 했으나 악성의 천재성에 칼을 꽂듯 이미 어두워진 청력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안나 홀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베토벤을 위해 지휘를 합니다.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지휘와 음악에 몰두하며 베토벤을 이끌어주던 그녀의 손길이 만약 ‘카핑’에만 그쳤더라면 관객은 야유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향곡이 흐르는 내내 베토벤의 눈길과 그녀의 눈길에 압도당한 관객들은 분명 그 이상의 것들을 품었을 것입니다.
카핑은 우리말로 ‘복사, 모사, 모방’등으로 번역됩니다. 세상에 이것만큼 큰 불법이 어디 있을까마는 원조 불법자는 바로 주님이 아닐까 합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답시고 당신의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을런지 어릴 적엔 의아해했지만, 당신의 모상대로 오신 아드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까지 당하셨으니 ‘카핑’은 분명 음험하고도 위험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닐런지요.
하지만 당신의 모상을 끝까지 고수하신 것을 보면, 창조의 ‘카핑’은 지상 최대의 과업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를 위해 ‘카핑 지저스’하심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떠나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겠다고 하시지만 앉을 자리 누울 자리도 분간 못하는 철부지 응석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카핑되신 귀하신 몸. 오늘도 그분은 누군가에게 ‘카핑’되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현자(벨라뎃다·월간 둘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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