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책상 머리엔 세장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 장은 가족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소화 데레사 성녀의 얼굴이 담긴 상본, 나머지 한 장은 지금은 돌아가신 어느 한국 주교님이 생전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주교님은 필자의 은사이기도 하다.
신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성인 한명쯤은 있다. 필자는 스무살 때,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고 그분의 영성과 삶에 매료됐다. 소화 데레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는 프랑스 리지외의 갈멜회 수녀로, 15세(1888년)에 수녀원에 들어가 9년의 수도생활을 보내고 스물 넷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교회는 1930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성녀의 이름 앞에 붙는 ‘소화(小花)’, 작은 꽃이라는 말은 성녀의 삶을 한마디로 잘 드러내준다. 하느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철저히 잊혀지기를 원했던 성녀의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된 작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일상(日常)의 자그마한 고통과 희생조차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고 신앙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성녀의 삶은 현대 신앙인들에게 영성의 또 다른 차원을 일깨운 것으로 평가된다.
데레사 수녀의 성덕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그의 저서 ‘묵주알’에서 “자연적인 행위도 중요하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의지는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 그대로다.
소화 데레사 성녀 외에도 매우 흠모하는 성인이 두 분 더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십자가의 축복받은 데레사(에디트 슈타인) 수녀다. 20대 초반, 우연히 접한 한편의 영화속 주인공에 넋을 잃었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다. 성인의 회심과 이후 삶의 여정들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수차례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새롭다. 그 뒤로 필자는 또 한명의 성인을 흠모하게 됐다.
수년 전 ‘에디트 슈타인-사랑과 진리의 불길’이란 책을 통해 또 한분의 성인을 발견(?)했다. 에디트 슈타인은 유다인 갈멜회 수녀로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아우슈비츠 빌케나우 수용소 가스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교회는 1998년 그를 성녀로 선포했다.
현대 현상학의 대가로 알려진 에트문트 후설의 문하생으로 철학도였던 그녀의 삶은 뛰어난 이성적 사유만큼이나 철저했다. 또 그만큼 드라마틱하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읽고 한순간에 하느님께로 개종한 일화가 그러하고, 수도회 입회까지 겪은 숱한 좌절과 성공 또한 그렇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흠모하는 성인 중엔 묘하게도 갈멜회 수도자가 두 명이나 된다. 이 무렵 ‘오상의 비오 신부’에 관한 책들도 섭렵하며 무척이나 흠모하게 됐다.
성인 성녀들의 삶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지침이요 방향타다. 프란치스코, 소화 데레사, 에디트 슈타인, 비오 신부는 살았던 시대와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겸손함과 하느님께로의 전적인 투신이라는 점에서 완덕(完德)의 모범을 보여준 분들이다.
“성인(聖人)이 되라”시던 은사 주교님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전대섭 편집국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