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갈구하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행복의 내용, 형식, 종류만이 서로 다를 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참된 행복은 덕목을 살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양의 현인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우선 동양의 경우 공자님은 “지나침과 모자람은 같다(過猶不及)”라고 중용(中庸)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있다. 서양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는 “덕목의 양 끝에는 악덕이 도사리고 있다”라고 중용(The mean)의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용기’라는 덕목을 예로 들면 모자람은 ‘비겁’이요 지나침은 ‘만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분은 정확하게 같은 내용을 간파하고 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The mean)과 공자의 중용(中庸)은 그대로 환치되고 있다.
참된 행복에 가까이 가는 길은 근본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중용의 자세가 필수이다.
지난 해 많이 읽힌 책
‘무지개 원리’가 국내에서 많이 읽혔다면, 세계적으로는 ‘시크릿’(The Secret)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두 책은 아주 비슷하다.
행복한 삶의 실현이 두 저서의 주제로, 적극·능동적 태도로 행복을 접근할 때 비로소 목표는 확보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논지이다. 차동엽 신부의 ‘무지개 원리’도 그렇지만 R. 번은 ‘시크릿’에서 구체적 행복의 종류와 내용을 건강, 재산, 명예, 권력, 출세 등으로 동일시해 묘사하고 있다.
물론 굶주림과 헐벗음, 질병과 무학, 전쟁과 좌절 등 고통이 행복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침과 모자람은 같다”라는 진리의 가르침을 소홀히 할 구실은 되지 못한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를 간과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축되고 주눅 든 삶에 대한 경종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북돋기 위한 뜻에서, 풀이하면 시소의 평형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의도라고 믿는다.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
현세에서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조화와 평형을 유지하는 길은 지극히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현세적 조건들을 탐닉할 것이냐 무시할 것이냐, 존재를 앞세울 것이냐 소유를 우선할 것이냐 등 기로에서 곡마단의 기예자처럼 평상심을 잃지 않고 균형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듭되는 시행착오와 일상의 훈련을 통해 평형의 요령들을 터득해야 한다.
고된 훈련과 요령의 체득과정은 무조건 자기를 버리거나, 고비길에서 정면대결을 회피하는 등 요행으로 얻을 수는 없다. 목표의 달성은 즉물적으로 직접 소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선은 항상 목표에 고정시켜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매순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여건에 대처할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행복의 내용이 물적 양적 차원의 것이라면 만족스런 상태는 분명 영원히 불가능하다. 행복의 크기는 제약요건을 극복하면 갈수록 커지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불만도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크릿’에서 R. 번은 불치병의 완쾌, 세속적 성공의 사례들을 거듭 인용하고 있지만 행복은 일회적 성격이 아니라 마셔도 마셔도 고갈되지 않는 근원적 본질의 차원이기에 행복을 평면적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악순환의 사슬에서 해방되는 길은 인내와 겸손, 희생에 있다. 바로 이 길을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예수를 체포하려는 대사제의 종의 귀를 자르는 행동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참고 견디며 고뇌 속에 희생하는 길임을 십자가는 밝히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는 앞으로 새 정부는 경제성장의 열매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평화방송과의 단독 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국민된 도리는 이같은 공언의 실천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것이라고 사회교리는 가르친다. 행복지수는 양적 크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난 대선 득표율을 당선자의 도덕적 의혹에 대한 면죄부로 비약하는 것은 절대불가이다. 국민의 진정한 바람은 “인간을 위한 경제발전이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서 인간이 아니다.” 장로의 신분인 당선자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 27)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지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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