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년 전에 필자는 좋은 지인 덕택에 연변에 다녀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연변은 일제시기에 이주한 선조들의 후예인 조선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고, 1998년의 ‘고난의 행군’ 이후에 한 때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할 정도로 탈북자들이 많은 곳이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거기서 탈북자 지원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그 곳에서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북한 여성들 몇몇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중국호구를 갖지 않은 불법체류자들이라서, 만나는 과정 역시 간첩접선하듯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우리의 60년대 초반을 연상케하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탈북 뒤 브로커들에게 팔려와 중국의 한족이나 조선족남자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나마 필자가 만난 사람들은 불법이라고 해도,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는 남편이 있고, 남편이 가족 외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허용해주는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집모양이 같은 단층공동주택의 한 후미진 곳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집안팎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필자가 만난 이 여성들은 제 나이보다 열 살 이상 많아 보였으며, 허약해 보였다. 만성 스트레스증후군 등으로 많이 아팠으며, 자주 심장병적인 증세와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사고비를 넘긴 몇 번의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이 지금의 이런 탈북여성들의 비참한 건강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하면 부부싸움이 나거나 맞거나 쫓겨나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의 경우에도 너무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성장장애를 겪고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필자가 거기에 간 것은 그 지역의 지원사업을 긴급구호에서 상시구호로 바꾸어야 하며, 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지속적이며 단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한 국제구호단체의 방향전환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필자의 생각은 이 아이들이 중국의 이방인으로 거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되며, 영양차원에서의 지원과 건강검진, 한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 등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탈북여성들 역시 한국으로의 귀국을 기다리며 받는 임시구호를 받기 보다는 이 여성들에게도 한어와 중국인들의 생활양식 및 사고방식을 가르쳐 중국사회에 통합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을 오고자 그 어려운 길을 택했고 지금도 들킬까봐 숨죽이며 사는 그런 여성들에게 그런 지원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러했다.
연변에서 알게 된 지인은, 필자에게 말했다. 만약 앞으로 몇 년 뒤에 통일된다고 가정한다면 키작고 새까만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일거고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3등국민 차별을 받을 거라는 섬뜩한 진단을 내렸다. 한국사회의 차별이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이어, 조선족에게, 또 왜소하고 작은 북한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는 것이었다.
우린 외국인들을 만나면 보통은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을 갖고 대한다. 미국이나 유럽쪽의 백인에 대한 태도와 동남아시아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흑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우린 이 탈북자들을 어디에 놓고 차별할까?
아마도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 그 아래에 놓인 계층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차별에 의해 왜곡된 세계에 산다는 느낌을 가진 이 세계는 결코 행복한 세상이 아닐 것이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의지나 행동의 결과와 상관없이 차별을 받는다면 그 역시 허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 학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난 월드컵 경기시 두 여중생이 미군장갑차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을 때 온 나라의 사람들이 촛불시위로 미군의 처벌을 요구했고 소파개정을 한목소리로 내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때 죽은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였다면, 우린 그렇게 애달파 하며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촛불시위에 나섰을까?
보다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국이 되는 것과는 다른 길이다. 물론 거기에 경제적인 기초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넓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과의 조화를 유지하며 사는 것을 위한 사회적인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길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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