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흔히 듣던 말들이 있었습니다. 옴팡지지 못하고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듣는 ‘어이구, 저 털털이’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사 별 관심 없이 심드렁해서 비실이, 그저 조금만 따뜻한 곳에 머무르기만 해도 잠이 들어서 잠순이 등등.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흐르던 말들이 언젠가부터는 제 귀에 옹이로 박혔나봅니다. 물결이 세차게 흐르는 이 사회에서 털털이나 비실이나 잠순이는 도무지 재빠르게 적응되는 게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원한 털털이, 비실이, 잠순이인가 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가볍게 들었던 말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 남아서 행동에 제동을 거는 것을 ‘인생대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 인생대본은 ‘털털이, 비실이, 잠순이’였던 것이지요.
‘가랑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심코 들은 인생대본은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코앞에 닥친, 마땅히 넘어야 할 첩첩 산을 보고 그냥 주저앉아 오르지 못할 핑계거리만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보면서 저 또한 무심히 ‘어이구, 저 고집쟁이’를 남발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한 구석에서 긴 기다림의 믿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인생대본은 새 살, 새 생명을 돋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속삭여주십니다. “나는 너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고, 두드리기만 하면 내가 열어줄 것이며, 세상 고통으로 슬퍼하지 말 것이며, 나는 너의 영원한 사랑이기를 원한다”고.
그저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그만인 이 황금나침반을 행여 게으름에 놓칠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이현자(벨라뎃다·월간 둘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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