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신앙의 신비는 인간 이성에 허락된 것이 아니다. 많은 지성들이 신앙을 이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지만, 아직도 이성으로 신앙을 해독하려는 시도가 회의적인 것을 보면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창조, 구원, 강생의 신비는 비유를 통해 하시는 성인들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내 삶의 일상들과 견주어 보면 알듯 모를 듯하기라도 한데, 삼위일체의 신비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기야 비천한 필자로서 그게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필자에게는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신비가 따로 있다. 고통의 신비이다.
빛이 더 찬란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성공을 위해서는 와신상담의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현세의 고통으로 천국 복락을 누린다 등등, 누구나 누구에게든 할 수 있는 말들은 믿음이 부족한 범부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그냥, 고통을 거치지 않고 받으면 안되는가?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해놓고, 내 잘못도 아닌 죄를 물어 고통을 주시는가? 더군다나, 아무 죄도 없는 어린 것들 조차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음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왜 허락하시는지?
오직 당신께만 믿음과 사랑을 주시던 신앙의 선조들이 왜 그토록 혹독한 억압과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 순교하지 않고서는 당신 백성의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당신은 편협한 분이신가? 왜 죄 없는 이들의 죽음을 허용하시는가?
그래, 약간의 테스트는 필요하다고 치자. 하지만 그 시험이라는 것이 극한의 고통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삶을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까지 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는가? 왜 당신은 약을 주시려고 먼저 병을 주시는가? 그냥 약이 필요 없도록 병을 안 주시면 안되나?
누가 좀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하느님으로부터 그 열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 더 이상 종교와 신앙 안에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종교와 믿음을 정신적 고통의 근원으로 여기기도 한다. 고통이란 불필요한 존재이고 퇴치해야 할 적대적인 현실이다.
이제 사순절이 코앞이다. 부활처럼, 고통을 음미하는 사순시기 역시 매년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한다. 2월 2일은 봉헌생활의 날이고 10일은 병자의 날이다. 봉헌된 삶은 고통과 환희를 포함한 우리 삶 전체를 바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고, 병자의 날은 ‘병’이 주는 고통의 의미와 그 고통에 대한 위로와 나눔을 성찰하는 날이다.
고통에 대한 나름의 해답은 이러하다. 살아봐야 안다. 상투적인 말이 생명을 얻는 것은 삶의 무게를 지닐 때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하실 때, 그 사랑의 계명은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 삶의 무게로 인해 진리로 다가오지만, 바람둥이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면, 내가 고통의 신비를 깨닫기 위해서는, 극한의 고통을 신앙으로 극복해봐야 한다는 결론인데, 쉽지도 않을뿐더러, 달가운 일도 아니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고통에 대한 어떤 묵상을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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