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고대하는 사순 시기는 참회와 보속의 때이다. 그리고 참회와 보속은 책임 소재를 시시비비 가려서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많은 시비와 논란이 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기도 하지만 정의의 하느님이시기도 하기에 정의를 찾아 시비를 가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도 역시 정의가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희생과 봉사를 잃은 시비에 집착하곤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자세에 당신 십자가로써 경종을 울리신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십자가의 참혹한 형벌을 허락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인간이 죄를 지었지만 당신께서 직접 성부께 참회하고 보속하심으로써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신 것이다.
사순 시기는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참회와 보속의 의미를 묵상하며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서 그 의미를 온전히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때이다. 옳고 그름을 밝게 가려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사순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내적 외적 참회와 보속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적 희망은 바로 이러한 참회와 보속의 자세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에게서만 티끌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가정과 사회, 국가 안에서 참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이기적 욕심이 빚어내는 비극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그러한 비극들은 수없이 우리들을 절망과 좌절로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어느 누가 우리 사회와 국가의 불행한 일들에 대해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사순 시기는 그저 매년 때가 되면 돌아오는 절기의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 미사 때마다 주님의 구원의 위업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듯이 사순 시기는 일련의 절기로 되풀이되는 가운데 매번 새롭게 구세주의 수난을 재현하며, 그 때마다 우리가 어찌 살아야 할지를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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