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을”(마태 20, 22)
행복할 때 하느님께 더 매달릴까? 어려울 때 하느님께 더 매달릴까?
당연히 어려울 때다. 어려운 일에 직면할때, 우리는 하느님을 더 필요로 하고, 하느님은 능력을 잘 보여주실 기회가 생기신다.
모토를 정하면서, 이 말씀이 내가 행복할 때 필요할까? 내가 어려울 때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어려울 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수많은 말씀들 가운데, “내꺼”로 세워둔 말씀 한마디가 더 힘 있게 나를 일으켜 주실 것 같았다.
말씀을 고르기란 참 어려웠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말씀이 아닌 성작이었다. 이때부터 “잔”이라는 말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성경을 들춰보니 대략 3번 정도 잔에 관한 얘기를 하신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세 번의 말씀 모두 쉽지 않은 뒷얘기들을 가지고 있는 말씀들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첫 번째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내게 직접 물어보시는 말씀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려울 때, 내가 좌절해 있을 때, 그때 그분이 내게 “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주신다면 좋겠다. 아무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면 정말 쓰러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꺼”로 정한 말씀은 “이 잔을” 이라는 세 글자다. 간결하게, 어쩌면 아무 말 없이, 힘겨워하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만으로도 눈물 머금고 다시 일어날 것 같았다. 조금은 투정도 부리겠지만 말이다.
서품식 전날. 당신의 피를 담아, 내게 내미시는 그 잔에 나도 뭔가 보태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서품식 때 청하는 것은 꼭 들어주신다고 했던가. 그래서 고르고 골라서 딱 세 가지만 청했다. 얻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분께 드리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농부의 땀, 어미의 젖, 탕자의 눈물”
열심히 일하는 성실함의 은총, 자녀들을 배불려 줄 수 있는 능력의 은총, 그리고 엇나간 순간 다시 깨우쳐 용기 있게 돌아올 수 있는 눈물의 은총. 아직은 한참을 더 받아야할 은총이고, 한참을 더 채워야할 숙제다.
그러다 또 힘든 순간이면, 어김없이 또 잔을 내밀며 물으실 게다.
“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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