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
부제품을 받고 느꼈던 부끄러운 감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이 모든 일은 하느님,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부족하고 부족한 내게 허락될 수 없는 일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서품을 앞두고 사목 모토를 정할 즈음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요한 서간 강해의 한 부분을 듣게 되었다.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마음대로 하십시오. 침묵하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십시오.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십시오.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이 뿌리에서는 선한 것 말고는 그 무엇도 나올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이 말씀은 다시금 내가 살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를 사목 모토로 정했다.
서품 상본은 외젠 뷔르낭의 ‘부활아침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이다. 이른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주님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요한과 그렁그렁한 눈물이 머문 베드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을까?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는 더더욱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사라졌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빌었을 것이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속에서도 간직했을 베드로의 그 어리석은 간절함을 나도 갖고 싶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요한 20, 9) 어리석지만 순수한 간절함을 가지고 싶어서 이 그림을 서품 상본으로 정했다. 어리석지만 순수한 간절함을 지켜나간다면 베드로를 도구로 삼으셨듯이 나 또한 주님의 작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묻혀 너무도 쉽게 잊고 쉽게 포기하는 나를 되돌아본다. 다시금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어리석지만 순수한 간절함을 기억하고 되살려야 함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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