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잠잠해 졌지만,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영어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일련의 영어교육정책을 내놓으면서 온 나라가 영어교육문제로 들끓었다.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담당한 사람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영어교육정책들이 늘락날락하는 동안에, 비단 이번 뿐 아니라 그동안 주로 입시 정책을 통해 계속 바뀌어온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도대체 교육철학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영어회화 실력을 곧 그 나라의 선진화, 특히 경제적 선진화와 연결시켜, 경제적 관점에서 영어교육의 가치를 역설하는 새 정부 측의 주장은 영어는 곧 돈 버는 수단과 직결되어 있고 또 영어를 잘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조장하고 있다. 물론 영어권 나라와의 무역이나 정치 외교의 차원에서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따라서 영어교육은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꼭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히 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단순히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고 외국인과 회화를 나누는 것 이상의 교육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영어에 집착하는가? 정말 영어가 좋아서 영어를 한국어처럼 잘하고 싶은 개인적인 열망으로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초등학교부터 영어권으로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등 가정 해체의 위기까지 감수하면서 영어교육을 시키려는 가장 근본적인 열망은 무엇일까? 우선 개인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영어를 잘 해야 하고, 또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도 영어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 개혁은 이렇게 개인의 사회적 성공의 열망과 맞물려 있는 우리나라 영어열풍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주도하여 그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새 정부의 의욕에 찬 개선안들을 접하면서, 인성교육과 연계된 언어 몰입교육을 통해 르네상스라고 하는 문화적 부흥을 주도해나간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운동이 떠오른다. 대략 13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럽문화를 새롭게 혁신한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화 현상은 인문주의(Humanism) 운동이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인문주의 운동은 일차적으로 교육개혁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개혁의 중심에 강화된 언어교육, 즉 수사학 교육이 있었다. 인문주의 운동에서 중시한 언어교육은 그리스어와 특히 라틴어였다. 당시 언어 교육자였던 인문주의자(Humanista)들이 언어교육을 중시한 것은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인간의 수준 높은 사고 그리고 뛰어난 도덕적 품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문주의자들의 외국어 교육은 사회적 출세와도 관계가 깊었다. 대학은 사회에서 공직을 수행할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으므로 그 인재들이 졸업 후 공직에서 서간과 연설문 작성, 저술 등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라틴어로만 말하고 쓰고 읽는 소위 ‘라틴어 몰입교육’이 중요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라틴어 몰입교육의 실용적인 목적은 곧 인간의 품성함양이라는 인성교육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언어교육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은 바로 라틴어, 그리스어로 된 우수한 고전작품들을 읽고 모방하여 글을 쓰고 그렇게 해서 배운 어휘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인문주의 언어교육은 현실적으로 당시 국제사회에서 필요했던 라틴어에 숙달된 시민을 양성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고전작품들의 발굴 및 연구를 통해 유럽 역사에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부흥까지 가져왔던 것이다.
새 정부가 올인을 하며 열정을 보이는 새로운 영어교육관에 과연 언어교육으로써의 영어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새 정부가 실행하겠다는 영어회화 중심의 영어교육은 절름발이 영어교육이고 저급한 영어교육으로 영어공교육을 싸구려 영어 몇 마디 말하는 수준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영어로만 진행되는 영어수업은 단지 영어단어와 어휘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영어식 문화에서 통용되는 사고와 가치, 생활습관 등도 함께 배우게 된다. 그렇게 배우는 영어식 문화는 학생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어로 된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또 들을 때 귀가 트이고 입이 열리어 새 정부가 원하는 소위 선진화된 수준의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는데, 부디 새 정부의 영어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외국어 교육에 대해 경제적 논리 이상의 교육적 신념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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