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1년 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수녀님께서 “이 사람 좀 도와줘”라면서 의뢰인만 두고 바쁘게 나가셨다.
의뢰인은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81년생, 당시 26세. 나는 그때까지 혼자 상담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빠뻘의 의뢰인을 앉혀두고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결국 러시아 수녀님께 전화로 통역을 부탁해 핸드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사실 의뢰내용은 간단했다. 일을 하다 사고로 왼손을 못 쓰게 된 의뢰인은 치료를 받을 동안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G-1비자를 얻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짧은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문제는 내가 처리과정을 상세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과 출입국사무소에 전화하고 서류를 작성해 다른 사람이라면 30분도 안 걸렸을 일을 나는 2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끝낼 수 있었다.
겨우 한숨 돌리고 작성된 서류를 건넸다. 그때 그 26살의 청년이 두 손으로 내 손을 부둥켜 쥐었다. 그 중 한손은 움직이지도 않는 손이었다. 그리고 서툰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수십 번을 고맙다고 말했다.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하느님께서는 그 서툰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의 입을 빌어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가끔씩은 귀찮을 때가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내게 하느님께서 말씀해주셨다. “고맙다.”
그 일 이후로 봉사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베푼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단 한번이라도 내가 베푼 일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 되고, 그 행복은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다운(아나스타시아·서울 노동사목위원회 상담실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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