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래 다섯 번째로 직선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제 우리 염원은, 국민적 고통과 좌절을 물리치고 국운을 융성케 해달라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약속이 틀림없이 이뤄질 것임을 기대하며, 그 장도에 하느님의 은총을 축원한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과 함께 약간의 우려 섞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는 ‘참여’를 지나 ‘실용’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실용’에 대해서 교회는 조금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 단면을 교회 문헌에서 보자.
‘신앙과 이성’ 제5항은 근대철학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초월적 진리에서 눈을 돌려 “실험적 소여들에 기초를 둔 실용적 척도들로써 판단”될 것을 우려했다. ‘생명의 복음’은 “실용주의적인 동기”로써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할 우려를 표명했고, ‘백주년’은 공정한 임금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면서, 합의대로 했다고 고용주가 할 바를 다했다고 자위하는 것은 “단순히 실용주의적”인 관념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절대적 진리에 바탕하는 교회가 실제적 성과를 강조하는 실용을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교회가, 실제 생활의 유익을 제공하는 실용에 대해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진리와 참된 가치에서 엇나가지 않는 한도 안에서이다.
수시로 상대적 가치로 전락하는 실용에 대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만큼 신랄할 분도 없을 듯하다. 베네딕토 교황의 통치와 사목의 초점은 상대주의의 도전에 대한 응전에 맞춰져 있다. 그분이 때로는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역시 상대주의적 가치에 대한 엄격하고 단호한 입장에서 비롯됐다.
현대철학의 한 조류로서 실용주의에 대해 가톨릭대사전은 “모든 이론과 진리의 완성은 실천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성이 있을 때 보편 타당성을 갖게 된다는 철학”이라고 정의한다. 새 정부의 실용주의가 엉뚱한 것이 아니라면 바로 이 같은 이념과 다르지 않다. 바꿔 말하면 국정 운영은 국익 추구라는 과제에 기여할 때 정당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사실 실용주의는 공허한 갑론을박을 지양하고 실제 삶과 연결 지어질 것을 지향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보편타당한 판단의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점, 따라서 어떤 일의 공과가 모든 이들에게 객관적으로 동일한 평가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함을 갖는다. 인식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문제에도 적용될 경우 야기될 부작용도 약점이다.
우선 실용은 만인의 실용이어야 한다. 새 정부가 인수위 활동 등을 통해 보여준 실용은 그들만의 실용, 1%의 실용이었다.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게 했던 국민들의 척박한 현실, 이명박 후보의 수없는 도덕적 결함을 묻어버린 절박한 심정들에 대한 새 정부의 무관심은 내각 인선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추세로 간다면, 새 정부의 실용은 게토의 실용에 불과하다.
아울러 우리는 실용이 진리를 묻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리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삶의 현실이기에 진리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다. 잠시의 실용을 위해 변하지 않는 진리를 폐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새 정부의 실용이 물질의 추구만이 유일하게 실용적인 태도라는 오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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