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서 나심으로써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죄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영원한 승리를 거두신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대축일을 맞았다.
강생의 신비와 함께 부활의 신비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이다. 강생의 신비가 당신 자신을 무한히 낮추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 주신 것이라고 한다면, 부활의 신비는 당신의 거룩한 신성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시려는 그 똑같은 사랑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부활의 신비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살기가 팍팍한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현실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우리가 참으로 부활을 신뢰하고 그 신비를 맛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정신적 피폐함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존엄함을 망각하고, 인간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살아간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고 있는 몇 가지 흉악범죄는 과연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을 알 수 없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행위의 바탕에는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한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깔려 있음을 안다. 아무런 자기 방어 수단이 없는 태아에 대한 공격이 그러하며, 자기 배가 불러야 함은 알면서도 이웃이 굶주리고 있음에는 추호도 눈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나눌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오히려 굶주린 이들에게 억압이 된다. 나라를 사심없이 돌봐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당파와 정쟁으로 날을 새운다.
이제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뵙는다. 영광은 수난과 고통, 희생과 헌신을 앞세웠다. 그 영광은 이기적인 영광이 아니라 주님과 이웃을 섬길 때 비로소 빛이 나는 영광이다. 그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그 빛을 받아 이웃에게 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거룩하고 뜻 깊은 날에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만민에게 그 빛을 비추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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