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T. S. 엘리어트는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첫 머리에서 만물을 겨울잠에서 깨도록 부추기는 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나른한 뿌리를 봄비로 깨우네. / 겨울은 따뜻했네. / 망각케하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球根)으로 근근이 생명을 이어 주었네…”
근자에 대학가에는 교수사회가 잠에서 깨어나도록 부추기고 흔들어대는 움직임들이 커지고 있다.
대학들이 교수 정년 심사와 승진, 재임용 심사를 대폭 강화하여, 일단 교수직에 들어서면 무난히 철밥통같은 정년을 보장받는다는 공식이 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조치들은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일어났는데 이제는 상당히 많은 대학들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승진, 재임용을 위한 교수들의 연구 업적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강의 평가를 공개하는 방법까지 채택하였다. 그 결과 국내 몇몇 유수 대학들이 정년 심사와 승진, 재임용에서 연구업적이 미흡한 교수들을 탈락시켜 교수사회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들은 현재 교수 사회가 정신적으로 메마르고 생산성이 고갈되어 재생의 기미 없이 살아있으나 죽은 듯한 황무지와 같은 상태라는 진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겨울잠을 마구 흔들어 깨우는 이 상황들이 혹자에게는 약간의 먹을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안일하게 머물 수 있는 터전을 위협하고 묻어버린 욕망과 기억들을 마구 헤집어 놓기 때문에 참으로 잔인한 계절일 수 있다.
허나 교수의 연구와 교육능력은 그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한 대학의 경쟁력과 직결되어 있고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이므로 교수의 연구 교육 능력 강화를 위해 이러한 외부의 어느 정도 강제적인 조치들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교수의 연구 업적과 교육능력을 지나치게 경제원칙의 잣대로 계량화하고 경쟁논리에 따라 측정하려는 시도이다.
교수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학문의 밭이 있어서 청춘의 귀한 시간들을 다 바쳐 그 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려 열매가 맺도록 가꾼다. 그 열매를 후학들에게 나누는 기쁨은 그들로 하여금 또 다시 자신의 학문의 밭을 새로 일구고 또 다른 열매와 나무를 심으려는 의욕으로 차게 한다.
인문학의 열매는 자연 공학의 열매와 다르며 그 학문의 열매들이 열리는 방법, 기간 등이 다르며 자신의 연구 열매를 나눠주는 교육방식 또한 학문의 영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각 교수의 학문 영역과 교육방식은 존중되어야 한다. 연구논문 한 편당 몇 점 하는 식의 평가, 그리고 강의에 대한 점수평가는 자칫 독자적인 학문영역과 그에 따른 교육법을 인정한 잣대로 획일화하여 평가할 위험이 있다.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교수들의 연구, 교육능력을 경쟁적으로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대학교육을 선진화하고 세계적인 위상으로 키우려는 국가적 필요와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각 대학들의 포부를 표현한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경쟁논리 속에 허덕이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키워야 하는 교육자로서의 교수들 자신이 승진과 재임용 과정을 통해 철저한 경쟁논리에 의해 좌우되어 사고와 의식이 경쟁의 틀 속에서 압박을 받으면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교육자 자신이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남보다 앞서고 경쟁적으로 업적을 쌓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의식은 교육의 장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대학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능력향상을 위한 개혁은 참으로 필요하다.
“율법 학자의 지혜는 여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지혜롭게 될 수 있다”(집회 38, 24)고 했는데, 교수들이 승진과 재임용을 위해 쌓아야 할 업적점수에 매달려 학자가 아니라 삭막한 학문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한 논문제조기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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