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가톨릭교회가 올해 6월부터 한 해 동안 그 탄생 2천년을 기념하는 이방인들의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 32)”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죽음까지도 당신 발 아래 굴복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편이 되셨는데 무엇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일제의 억압, 그 암흑 속에서 일단의 청년 평신도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창간한 가톨릭신문이 올해로 81주년을 맞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 32)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서 바오로 사도를 통해 주시는 이 격려의 말씀에 힘을 얻어 진리를 증거해야 하는 교회 언론의 소명에 더욱 충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난해 저희는 역사적인 80주년을 기념하면서, 독자 여러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 감격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저희는 이제 100주년을 향한 본격적인 걸음이 시작되는 81주년을 맞았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다시금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여는 이 뜻 깊은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만방에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 바오로는 아직까지도 선교 지역의 교회로 남아있는 우리 한국교회와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톨릭신문은 여전히 영적으로 이방인인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아직 그리스도를 직접 알지 못하는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거침없는 복음의 메신저로 나서게 된 것은 결코 그들 스스로가 잘 나거나 용맹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로 삼으신 이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때로는 비겁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이 지난 8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하느님의 말씀 선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때로는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평범한 이들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겁에 질려 있던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주신 성령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저희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100주년을 향해 가는 언론 사도직의 길 위에서 저희는 이처럼 사도 바오로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복음과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에서 기념은 단지 과거의 반추가 아닙니다. 성사들처럼 참된 그리스도교적 기념은 삶의 변화가 수반됩니다. 이미 저희는 지난 해 80주년 기념을 통해 100년을 향한 다짐과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저희는 그 각오와 다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쇄신과 변화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지향을 품고 있습니다.
우선, 가톨릭신문은 교회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시대적 소명을 철저하게 인식하고자 합니다. 교회 언론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대한 성찰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교회 언론의 주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저희는 가톨릭신문이 교회의 ‘기관지’임을 자임합니다. 저희는 교회 언론에 대해 기관지의 성격을 탈피하라는 비판적 지적을 종종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교회 신문은 언론인 동시에 교회가 그 고유한 소명의 필요성에 의해 발행하는 교회의 기관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말하고 지향하는 기관지는 교회 구성원들의 잘못과 실수까지도 덮거나 미화하는 구태를 행하는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나팔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기관지는 교회 안의 거룩한 권위에 따라 전해지는 교회의 가르침을 알려주며, 가치관의 부재 속에서 참된 권위와 가치를 지닌 것을 식별해주며, 사람의 가치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전파한다는 의미에서 기관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신문은 그 참된 의미에서 기관지로서의 소명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신문은 동시에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시대적 징표에 민감한 예언자적 소명을 함께 지닌다는 것을 저희들은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단일한 권위, 단일한 커뮤니케이션과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과 견해가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원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반발하고 무시합니다.
신앙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도 하느님 백성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더욱 존중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많이 나누길 원합니다. 가톨릭신문은 이런 하느님 백성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임은 바로 가톨릭신문의 창간 정신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신문 창간 81주년은 새로운 역사의 첫 걸음입니다. 100년을 향한 첫 단추를 꿰는 시간입니다. 저희 가톨릭신문은 지난 80년 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관심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100년으로의 여정에 변함없이 동참해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절히 청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으로써만 저희의 순례는 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가정에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창영(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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