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코 앞에 둔 요즘, 신문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론이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자기네 이념과 성향에 따라 정치적 선택과 논조를 펴는 것은 상식이다. 요즘 신문 읽기가 남다르다는 것은, 그렇더라도 작금 우리 언론들의 이념 논쟁이 너무 선명하기에 하는 소리다. 선명해서 이상할건 없다. 그래서 나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총선 승리’의 견인차라도 될 마냥 총력전(?)을 펴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자기네 이념과 성향, 입맛에 맞는 주장들만 넘실대는 그 이면엔 이해득실을 고려한 뻔한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가동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인수위 활동 초기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영어 몰입교육 논란 때도 그랬다. ‘한반도 대운하’를 두고 공방은 이어졌고, 급기야 최근 전(前) 정부 출신 공공기관 단체장들에게 사퇴를 촉구하는데서 (이념)논쟁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사퇴 논란의 진행과정은 이렇다. 3월 11일 여당인 한나라당의 원내 대표가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전 정부 출신 공공기관 단체장들이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청와대가 “맞는 얘기”라며 슬쩍 거들었다.
그러자 신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놓고 “노무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 예술계 단체장들은 자진 사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이어 14일로 예정된 문화부 청와대 업무보고 때 해당 단체장들은 참석하지 말도록 통보해, 그 진의를 두고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한 각 언론매체들의 보도방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소위 보수 언론들은 “정권은 바뀌었지만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여당과 유장관의 발언이 합당하다는 논지를 폈다. 반대로 일부 언론은 대통령이 바뀌고 야당이 여당 되었다 해서 정부나 권력기관뿐 아니라 시민·문화단체까지 모조리 물갈이 하겠다는 발상은 마녀사냥식 인적 청산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보도행태들은 각기 서로 다른 성향만큼이나 첨예하게 대립된다. 보수 언론은 급기야 “좌파 이념을 무슨 복음(福音)이나 되는 양 퍼뜨리던 좌파 문화예술인이란 사람들이 이념이 달라도 좋으니 밥자리만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며 확실하게 정부 편을 들어주었고, 진보 언론은 ‘배우 유인촌’이란 실명까지 거론하며 “정치권력의 하수인 노릇 그만하고 무대에서 연기하라”고 쏘아부쳤다. 이러니 신문 읽는 재미가 남다를 수 밖에. 물론 친절하게도 두 가지 성향의 신문을 다 볼 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식별력만 가진다면 언론들이 무어라 떠들든 크게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정치란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의 이념 논쟁이 이쯤되면 이건 과열양상을 떠나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기에 하는 소리다. 둘 다 ‘코드놀음’에 다름 아니다. 이왕 잡은 정권 확실히 밀어주자는 쪽과 한시라도 되찾아와야 할 정권에 목 맨 언론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면 심한 표현일까.
하지만 이것만은 제대로 알아 두자. 민주주의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사실을. 다양성과 관용 또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란 사실을 말이다. 총선이 끝나기까지 10여일 동안 온 나라는 그야말로 정책과 이념이 맞붙는 전쟁터로 변한다. 누구를 찍든,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자유다. 그러나 어느 것이 균형과 견제에 적합한지, 공동선 실현을 위해 나은 선택인지 한번쯤은 고민해보자. 보릿고개를 넘던 과거 6~70년대식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에 현혹되지 말고.
전대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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