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돼지 값이 폭등해서 농민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 동네사거리에 붙었던 현수막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쫄딱 망했습니다. 빨리 사가세요. 똥값입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돼지고기값이 싸다고 해도 저렇게 남의 아픔을 후벼 파면서 장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비슷한 현상이 요즘에 다시 보도되었다. 서해안 청정해역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있은 후 절망에 빠져 있는 서해안 주민들을 돕기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이어진다는 소식이 있었다.
‘절망’을 이용하는 ‘욕망’
바쁜 시간을 쪼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바위에 이끼처럼 붙어 기름을 닦는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태안지역의 어민들을 돕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이렇게 모인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이런 따스한 손길과 함께 동시에 움직이는 얄미운 사람들이 있었다. 돈독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주로 서울 부동산 투자자들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은 기름유출여파로 땅값이 20~30% 하락할 것을 기대해 해안가 주변의 헐값에 나온 펜션과 땅을 사려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움직이기 전부터 나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남의 절망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인간의 이기심은 그 한계가 없는 듯하였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인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아픔이 나의 희망이 되는 세상인가? 태안주민들이 현재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고 삶의 희망을 잃고 2명이나 이미 자살을 선택한 이 지경에 건물과 땅을 사겠다고 나서는 외지인들의 문의와 방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사회의 일이 다양하고 돈 버는 방법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네슈퍼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신장개업을 한다고 사은품을 주는 행사의 이면에는 이미 망해버린 동네슈퍼 주인의 비애가 있다.
또 대형할인점에서 드링크음료를 1000원에 4개 하면서 파는 그 판촉 뒤에는 덤핑판매를 해서라도 돈을 메꿔야 하는 판촉사원의 아픔이 있고, 깨끗하게 정리된 도로의 이면에는 쫓겨난 노점상들의 슬픔도 있다.
물론 우산장사와 양산장사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얘기도 있지만, 세상살이는 어느 한쪽이 득을 보면 어느 한쪽이 실을 감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득실은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한 수준 위에서의 득과 실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권이라는 인간의 권리의 개념을 발전시켜오지 않았는가? 또한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가여히 여기는 ‘측은지심’이라는 본성도 있지 않는가?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을 보고 측은지심을 갖기 보다 득만을 좇아가는 것은 인간의 못된 야만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돈 되는 것이면 무조건 좇아가는 하이에나 같은 질주의 욕망이 어느새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하고 있나보다.
‘오병이어’ 기적의 실체
어쩌다가 이 사회가 이렇게 모질어졌을까? 마르코 복음에는 기적이야기가 나온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4000여 명을 먹이고도 일곱 바구니만큼 남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 이야기가 좀 고까운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분이 인간들을 굶주리게 하시는 걸까. 그 해석은 한 수녀님의 설명을 통해 울림으로 다가왔다.
제자들이 군중을 향해 수중에 가진 것을 물어보았을 때 아무도 내놓지 않았단다. 가진 것마저 빼앗길까봐. 그러나 어린 아이가 아무 계산 없이 몇 개의 빵을 바치자 예수가 축복해주셨고 이를 본 사람들이 부끄러운 마음에 너도나도 내놓았단다. 그러자 각자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예수의 기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남의 아픔을 나의 기쁨으로 만들려는 메마르고 비정한 마음을 접고, 절망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의 줄을 잡고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갖자. 그리고 나누자. 우리 사회가 그렇게 모질고 잔인하지 않다는 것을 푸르른 봄빛 속에서 느끼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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