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는 노래가 거의 없다. 중고등학생일 적에는 도전 1000곡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가요는 물론 유행하던 팝송까지, 악보 아래에 한글로 영어 발음을 적어가면서까지, 줄줄 외웠지만.
세월에 좀먹어 흐려진 기억은 이제 노래방 화면을 보지 않고 온전히 한 곡을 부르는 건, 애국가 1절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금까지 한 80%는 기억하는 노래 한 곡이 있다면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이다.
사람이 사람처럼 취급되지 않던 시대, 꽃도 사람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지 않던 시절, 그 꽃보다 아름다웠던 가사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노래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넓고 원대한 꿈을 향한 가슴 속의 의지, 힘들고 어두운 세상살이를 벗들과 함께 헤쳐 나갈 때 서로에게 힘을 얻게 되는 그 믿음의 연대,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우리 자신인 참 사랑의 회복에 있었다.
우리는 종종 들녘 한편 무성한 잡초 사이에서 아롱아롱 흔들리는 작은 들꽃 하나, 회색 시멘트벽 틈새로 빼꼼이 삐져나오는 엄지 손톱만한 봉우리 하나에도 경탄하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낸다. 꽃잎 한 잎이 펼쳐지는 사소한 파노라마를 보면서 자연의 신비를 노래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하게 단장한 꽃이라도 사람에 비할 수 있을까. 온통 깊이 팬 주름살투성이 촌로의 얼굴에서 우리는 오히려 사람의 가장 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주름 하나마다 감당키 어려웠던 삶의 질곡이 채워진 그 초라한 얼굴에서, 우리는 흙을 갈아 자식들을 가르친 사랑을 발견한다.
자기 삶도 감당키 어려웠지만 배 곯는 이웃을 위해 쌀 한 바가지 퍼낼 수 있는 사랑의 연대를 본다. 아무리 힘들어도 막걸리 한 사발에 시름을 던지고 곰방대 한 모금으로 원망을 풀어내는 여유로운 관조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이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착하고 선한 사람도 있지만, 흉하고 악한 사람도 많은 것이 인간 세계. 노래의 주인인 안치환도 그렇게 말한다.
“아름답자고 부르는 노래죠.”
그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고 희망이다. 희망이 없을 때에도 희망해야 한다는 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시인 박노해는 더 강경하게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평생의 동료로서 사람들에게 거는 희망이 바로 우리가 지니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취해 스스로가 사랑이 될 것을 믿고 희망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사람에 대한 믿음, 사랑과 희망들 그 뒤에 감춰져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흉한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거짓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조건 없이도 사랑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현존 안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 본 사람”도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노래, 그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우리는 “참 사랑”이 되고 그래서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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