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슈바이처’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렸던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의 삶은 ‘우리 시대의 성인(聖人)’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이땅의 버림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자 아버지요, 때론 친구였다.
가난한 이들에게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선우 원장의 일생은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살아있는 성자’의 모습을 남기고 떠났다.
18일 선종 이후 그의 빈소에는 고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도 언론의 보도를 보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숭고한 삶을 기렸다. 그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요셉의원 홈페이지에는 선우 원장의 유지를 이어 요셉의원을 돕겠다는 시민들의 온정이 넘쳐났다. 현직 의사에서부터 20대 후반의 사회 초년병까지,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겠다는 이들부터 기꺼이 자원봉사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까지, 종교와 이념을 넘어 선우 원장의 사랑나눔은 그렇게 또 다른 사랑을 낳았다.
1983년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가난한 이들에 눈을 뜬 선우 원장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1987년 서울 신림동에 행려병자들을 위한 요셉의원을 설립했다. 97년 영등포로 옮겨 오늘까지 21년동안 행려병자들 곁을 지켰다. 그동안 40여만명이 요셉의원에서 육신의 고통을 치유하고 고통을 덜었다. 한해만, 두 해만 하던 그의 선한 마음은 20년을 무료진료 사업에 몸바치게 했다. 호암상,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 기념 특별 사회봉사상 등 상금도 모두 요셉의원에 내놓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던 그는 결국, 암이라는 육신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너무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2005년 본지에 쓴 글에서 “우리에게 기적이란 가난과 절망으로 망가진, 더럽고 게으르다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보는 일이다”고 적었다.
“예수님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신앙의 눈을 뜨기에는 두이레 강아지만도 못하다”며 겸손해했다.
그가 떠나던 날도, 그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도 요셉의원은 어김없이 문을 열었다. 이 시대 사랑의 표징인 요셉의원을 보듬고 지키는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한평생 사랑으로 살다간 선우 원장에게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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