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오전 8시30분 중국 네이멍구 마찌아즈 천주당.
개포동본당 주임 염수의 신부님 집전으로 미사가 계속되자 눈물이 조금씩 나온다. 성체시간이 되자 마찌아즈 주민들이 성가를 불러줬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은 검고 손은 마디마디 파였지만 성모님의 사랑이 가득한 분들이다.
1835년 조선교구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이곳에서 돌아가셨을 때 모방 신부의 집전으로 장례미사에 참여했던 분들의 자손이 이 분들이다. 성당과 성물을 파괴했던 문화혁명 중에도 이들은 목숨 걸고 신앙을 지켜왔으니 그들의 성가야말로 삶과 죽음까지 넘어선 ‘순교자의 노래’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1년간 머무셨던 시완쯔에서 이곳까지는 포장된 길을 버스로 달려도 12시간이나 걸리는 험로다. 주교님은 왜 그리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셨을까? 한시라도 빨리 조선의 교우들을 만나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목자 없는 조선의 양떼들에게 빨리 다가가기 위해 목숨 건 걸음을 하신 것이다. 문화혁명 속에서 수십 년간 누군가의 집 섬돌로 사용되다 기적적으로 제자리에 돌아온 묘비의 신비도 가슴을 친다.
성체를 영하러 나가다보니 동행한 작가 한수산 선생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 가톨릭신문에 연재할 소설 ‘아! 최양업’ 신부를 추적하다 결국 도달한 큰 그릇 브뤼기에르 주교. 한선생님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주교님을 알게 되었고 순례에 동행할 수 있었다”고 기쁨을 토로하셨다.
염신부님은 제대에서 내려와 일일이 마찌아즈 신자들을 축복하며 평화의 인사를 보냈다. 우리와 중국교우들은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통해 형제가 된 것이다.
마찌아즈를 뒤로한 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인 1931년 그토록 그리던 조선으로 돌아가셨던 ‘유해이장로’를 따라 갔다. 우리는 단둥의 압록강 철교까지 갔지만 신의주를 눈앞에 둔 채 돌아서야 했다.
4박5일간 짧은 순례였지만 복된 순간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순례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큰 기쁨이었다.
장재선(로사.개포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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