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오는데도 이 날만 되면 내가 살아 온 시간들을 줍고 싶다. 내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점검을 해보고 싶어진다.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할 멋진 하룻밤을 보내야 될 것 같은 밤이었다.
재미있는 영화 구경을 갈까 하다가 노인들로 구성된 ‘메아리’ 음악회를 가기로 했다. 그들과 함께 한다면 가버린 기억들이 생생하게 봄의 새싹처럼 돋아날 것 같아서였다.
서투른 사회자의 인사말에서부터 풋풋한 친근감을 느끼기도 한 무대였다.
합창단원들의 모습을 보자 다랑논에서의 햇살이 물결치는 것 같았다. 꼭대기에서 내리막 논이랑에까지 바람이 일렁이는 듯했다. 어울림의 아름다움이었다.
‘할아버지’하는 어린 아이의 부름에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불빛에 행복의 색채를 띄우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김 스테파노 신부님과 김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뒷모습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이 수십 번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어텀리브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동안 나는 희미한 시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새로운 나로 재생시켜 줄 것인가.
주님의 텃밭에서 노래로 봉사한다는 합창단원들에게 긴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사는 사람에게는 항상 기쁨이 넘친다. 울타리 밖의 호박넝쿨이 아니라 나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봉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활기차고 역동적인 삶을 갖게 하나보다.
계단을 내려오는 그이의 느릿한 걸음걸이에서 나만이 떠오르는 옛날의 멋진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아! 그 때의 시간을 줍고 싶다.
오래된 기억 속으로 묻혀가는 오늘,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음을 생각할 것이다.
이소애(체칠리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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