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지하철을 탔는데 전동열차 문 바로 옆에 붙은 비데 광고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 광고에는 수건을 깔고 앉은 한 여성의 나체의 뒷모습이 비데와 나란히 실려 있었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왜 비데 선전에 여성의 몸을 등장시켰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아마 여성의 신체 건강상 비데를 남성보다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일 수 있다’하고 광고 제작자의 깊은 속을 헤아려보았다.
그렇다면 여성 건강과 청결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비데를 선전하는 광고가 되어야 하고 구태여 여성의 나체가 광고에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남성들도 비데를 쓰는 것이 좋다면 왜 남성 나체가 함께 등장하지 않았을까.
여성의 청결 문제 외에 여성의 나체광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면 남성의 시각적 관심을 더 끌 것이라는 것은 광고제작과는 전혀 무관한 나도 충분히 계산할 수 있는 점이었다.
여성의 몸을 비데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그 광고에 함축되어 있다면 여성의 몸과 비데의 공통점들이 무엇이 있나, 그런 사고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몸은 어떤 것인가, 그러다가 여성 나체 광고를 보고 자극받은 남성들이 저 비데를 많이 구매할까하고 이리 저리 생각을 해보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철을 내렸다.
여성의 몸이 상품광고에서 대상화되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도 흔한 일인데, 여성의 몸의 대상화는 이미 13세기에 서양 문학의 연애시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페트라르카식 연애시에도 등장한다.
라우라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한 페트라르카의 연애시는 이후 수많은 서구 남성들이 연애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표본들을 제공하였는데, 사랑하는 여인의 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여인의 이마, 눈, 볼, 입술, 목, 가슴, 그리고 허리, 배, 다리 등 부분 부분은 남성 연인의 상상을 자극하여 백합, 별, 장미, 산호, 상아탑, 양털, 성채 등의 수식어와 더불어 최고의 찬사가 터져 나오게 하지만, 그 찬사들은 여성의 몸을 철저히 파편화시킨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전인격적인 주체는 해체되어 파편으로만 존재한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여성의 몸은 남성의 사랑의 열정에 의해 소나 돼지의 몸이 부위별로 먹기 좋게 나누어지듯이 부위별로 대상화되어 부분 부분이 다른 맛으로 남성의 감성을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연애시의 원류로 간주되는 페트라르카식 연애시에서 여성의 몸이 이렇게 대상화되고 있는데, 그 후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기는 커녕 대중매체의 발달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페트라르카의 품격 있는 표현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TV나 잡지 등의 광고가 대표적인 예들이 되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끊임없이 상품화되고 이용당하고 있다. 여성의 몸은 경제, 문화, 과학, 의학 등 각 분야에서 서로 차지하고 이용하기 위해 치열하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특히 여성의 몸을 겨냥한 다이어트 산업, 성형 산업,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더욱 가속화된 포르노그래피와 성매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고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앞 다투어 경쟁하고 있는 생명과학기술의 핵심에도 여성의 몸이 있다. 복제배아연구, 인공수정, 대리모 등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여성의 몸이 철저히 도구화되고 국제적으로 상품화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성폭력만이 여성의 몸과 정신에 씻을 수 없는 폭력의 상처를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도구화, 상품화하여 유린하고 남용하는 소비성향과 과학정책 또한 여성의 몸과 정신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몸이 만신창이가 된 현 상황들을 볼 때, 만신창이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의 으뜸가는 기능은 생명출산과 자녀 양육이다. 여성의 몸이 열 달 동안 아기를 키우고 양식이 되는 젖을 낸다면, 생명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출산과 양육은 여성 고유의 경험이므로(요즘은 자녀 양육을 하는 아버지가 있기도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수난과 죽음, 부활을 파스카의 잔치와 새 생명 출산으로 표현하는 그리스도교적 비유들이 남성들에게 보다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예수의 고통스러운 수난과 부활을 통해 여성은 자신의 몸이 겪는 출산과 육아의 경험들의 영성적 차원을 깨달을 수 있고, 또 그 경험들을 구원적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하고 대상화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을 즐기고 예수님의 몸에 다시 매질을 가하고 십자가에 매달고 창으로 찌르고 그런 후에 귀에다 목에다 옷에다 자랑이라도 하듯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듯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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