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일을 하다 보니 비교적 복장이 ‘캐주얼’하다.
말이 캐주얼이지, 때로는 노숙자 차림이다. 지명도 있는 취재원을 만날 때나, 큰 행사 취재를 할 때는 가끔 정장 차림도 하지만, 대부분 나만 편하면 좋은, 그런 차림이다.
데스크랍시고 취재원들을 직접 만나는 경우가 뜸해지게 되자 복장이 더 불량해져서, 가끔은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 타던 복장으로 종일 의자 위에 책상다리로 앉아 있기 일쑤이다.
아내와 가끔 다툼을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불량한 차림이다. 낫살이나 먹어서 애들처럼 지 편한 대로 입고 다니는 모양새가 영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복장이 불량하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마음까지 불량해지고, 몸이 편한 만큼 마음도 이완됨을 느낀다. 그럴 때면 일부러 ‘목댕기’로 스스로를 졸라 매야 할 필요를 느끼기는 한다. 실제로 빳빳이 다려 둔 와이셔츠에, 갈수록 더 끼는(?) 하나 뿐인 정장을 입고 나서면, 다소간의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외모야 워낙 평균보다 빠지는 탓에, 때 빼고 광 내서 애써봐야 그게 그거인지라 굳이 노력할 필요를 못 느꼈다. 결혼하고 나서는 더 그러했다. 연애 시절에는 그래도 남 보기 민망할 정도는 아니기 위해서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었지만, 결혼 후에야 어차피 임자 있는 몸, 아내를 포함해, 남의 눈에 잘 보일 필요를 전혀 못 느낀 탓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머리가 하도 봉두난발이라 아내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미장원에 들렀다. 늘어지게 낮잠을 잔 뒤라, 머리는 곳곳에 까치집이고, 며칠 안감아 식용유를 바른 듯 반질반질 윤이 나 가위가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어쨌든 머리를 깍고 나서, 돈을 내려니 지갑을 안 가져왔다.
아내 왈, “당신 머리 깍은 거니까 당신이 돈 내.”
사랑스럽게 콧소리를 섞어, 필자 왈 “나~는 니꺼자나, 그러니까 당신이 돈 내~.”
순간 대오각성의 순간이 벼락같이 찾아왔다.
내가 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혼인의 서약을 하는 순간, 나는 아내의 것이고, 아내와 장차의 자녀들에 대해서 몸과 마음의 헌신을 해야함을 맹세한 것이라는 각성. 내가 어떤 한 사람을 내 것으로서 얻은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주어야 할 대상을 찾았음이 바로 결혼의 의미라는 깨달음이었다.
사실 결혼 후 나는 그 사실에 얼마나 소홀했던가. 결혼 후 내 얼굴은 내 것이 아니고, 내 외모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것이기에 나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가꾸고 아름답게 꾸며야 했다. 더 이상 잘 보일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내 한 사람만으로도 내가 스스로를 열심히 가꿀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저 편한 대로 옷 입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불만스러워했던 나는 혼인의 서약에 소홀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받았다고 영원한 구원을 결정적으로 획득한 것은 아니다. 영혼의 단장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례를 통해 그분과의 영원한 결합을 서약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몸과 마음의 헌신을 바쳐야 할 배우자로서 그분과 혼인을 한 셈이다. 그 서약에 충실하려면, 나 편한 대로 미사도 빠지고, 기도도 안하고, 책상다리로 게으름을 피워선 안된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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