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 21)
어릴 적 다들 꼬마 녀석이 매일같이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좋아보였나 보다. 뭔지도 모르는데 신부되라 소리를 많이도 들었다. 우쭐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신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갈 나이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그 소리를 들었다. 그땐 마음이 무거웠다. 우쭐한 마음으로 들었을 때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소리가 도무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신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통 서품 전에 사제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며 성경 속에서 ‘모토’를 정하라 한다. 그즈음 성당에서 묵상을 하고 있노라면, 사제생활 동안 살아갈 멋진 모토보다는,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시던 예수님의 슬픔 서린 눈동자가 쉼없이 떠올랐다.
답은 알고 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무얼 찾아 여기까지 왔을까?’ 답답함만 더해 갔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내 영혼을 가득 채워왔던 말씀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다.
그냥 모든 것이 밝아졌고, 어두움이 사라졌다. 세상 어느 누가 선뜻 자신있게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라고 필리피인들에게 고백하던 사도 바오로, 노년의 바오로였다. 달릴 길을 다 달린 노년의 모습.
그리고 말한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 모습이 나를 끌어당긴다.
나에게 주어진 성소(부르심)에서 도대체 떠나지지 않는다. 그러니 성소겠지. 그리고 나에게 그 성소가 매일같이 삶의 여정으로 주어진다.
한순간 ‘네’라는 대답으로 끝나지지 않는, 일생을 살아내야 하는 여정. 그 여정에서 도대체 떠나지지 않기에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여전히 예수님의 수많은 물음에 고민하고, 도전적인 그 사명에 어려움을 느끼며 산다. 다만 나 또한 노년의 바오로가 되었을 때 ‘나에게도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라고 고백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서품 상본은 파릇파릇 젊은 사도 바오로의 모습이 아니라 다 늙어버린 노년의 바오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