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지난 5월은 무척이나 잔인한 달이었다. 5월 2일 미얀마에 들이닥친 사이클론과 12일에 중국을 뒤흔든 대지진은 가히 지구촌의 대재앙이었다. 죽은 사람이 수십만이고, 수백만 아니 수천만이 재앙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재앙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보다 고통스런 6월과 7월, 그리고 나머지 세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경악스런 순간의 기억과 파괴된 환경이 그들을 더욱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는 인간의 과도한 개발 욕구나 발전에 대한 맹신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이러한 재앙은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자연재앙이었다. 그러나 재앙이 일어난 다음의 일은 역시 인간의 몫이다.
특히 미얀마의 지도자와 중국의 지도자가, 그것도 비슷한 정치적 상황에서 비슷한 재앙에 직면하여 보여준 선택의 행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미얀마의 경우 온 탄 슈웨 장군이 철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반면에, 민주화 운동의 기수 아웅산 수지 여사는 12년째 가택연금 상태이다. 미얀마 군부는 정권의 강화를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하고, 영원한 권력을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헌법에 따르면 군출신이 아니거나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피선거권이 없어지므로, 결국 수지 여사는 2010년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의 경우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 정권의 마지막 보루인 한편,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를 피로 진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강한 중국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8월 베이징올림픽 개막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코트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므로, 티베트 유혈 사태로 악화된 세계 여론을 무마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을 위해서는 절대절명의 사안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서 대재앙을 마주한 미얀마의 지도자와 중국 지도자가 한 선택은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그 결과도 판이하다.
사이클론 앞에서 탄 슈웨 장군은 재앙을 축소하고 외부의 지원을 거부했다. 그는 구호단체와 NGO, 심지어 기자들의 출입도 막아버렸다.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는 동안에 그는 국민투표를 강행하고,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또다시 연기하였다.
결국 자연재해인 사이클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야말로 한 인간의 권력욕구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했다. 어찌 미얀마 사람들만 이를 알겠는가?
이제는 세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군부의 철권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제사회는 한 국가의 인종청소나 대량학살뿐만 아니라 자연재난에 대해서도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일국의 자연재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 여론은 탄 슈웨 장군의 무자비한 태도가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이와 달랐다. 그는 대지진이 일어나자 2시간도 안되어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가장 시급한 것은 텐트라고 세계를 향해 외쳤다. 지금의 중국이 어찌 텐트 만들 돈이나 힘이 없겠는가.
중국의 대지진 소식과 함께 원자바오의 눈물도 세계의 언론을 타고 동정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원자바오는 대지진 이후 올림픽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계의 언론도 이제 더 이상 올림픽 개최에 대한 우려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전세계의 티베트인들은 5월 말까지 각국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를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이제 세계의 여론은 대지진 이후 중국의 진정한 변화에 관심을 모우고 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에도 재앙은 일어난다. 지금 우리에게는 미국쇠고기문제나 석유파동도 거의 재앙에 가깝다.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도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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