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부산교구장을 지낸 최재선 요한 주교가 96세를 일기로 지난 3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은 빈다.
고 최재선 주교의 삶은 기도와 가난, 겸손과 순명의 모범을 보인 참 스승의 삶이었다. 1962년 초대 부산교구장에 취임한 그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부산.경남 지역 교회가 오늘날 교구 사제 300여 명, 교구민 40만명의 거대 교구로 발전하는데 초석을 놓았다. 70년대 초 교구 발전 자금을 얻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최 주교가 독일인 은인의 집에서 묵주를 손에 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성모님에 대한 믿음과 순명, 교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최 주교의 삶은 “사제가 되는 것 보다 사제로 평생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세간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은퇴 후 주교관을 마다하고 자신이 창설한 한국외방선교수녀원 입구 경비실 2평 남짓한 방에서 20여 년을 산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귀감이요 감동이었다.
최 주교는 비좁은 그곳에서 손님을 맞았고, 선풍기도 없이 한여름을 났으며, 겨울철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는 날이 훨씬 많았다. ‘불 같은’ 성격이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모두가 자신에게 엄격했던 만큼 주변 사람들도 더욱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속깊은 애정의 표현이었다.
최 주교는 또 교구의 모든 일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님의 뜻을 따르는 순명의 삶을 살았다. “혼자서 바치는 묵주기도가 양이 차지 않아 교구민들과 함께 묵주기도 바치기 운동을 시작했다”는 최 주교 생전의 말은 믿음 하나로 버텨온 그의 삶을 잘 드러낸다. 명절날 세배를 온 손주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외워야만 겨우 세뱃돈 1000원을 건네던 짠돌이 할아버지였다. 받은 은혜를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한국외방선교회와 외방선교수녀회의 창설로 결실 맺었다.
최 주교는 특히 기도하는 사제, 기도하는 수도자를 늘 강조했다. 새 사제나 새 주교가 인사차 방문하면 즉석에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앞으로 기도 많이 해야 한다”고 당부하곤 했다. 이승에서 살았던 세월만큼이나 많은 추억과 가르침을 남기고 본향에 든 최재선 주교. 가난과 기도, 믿음의 삶을 사신 최재선 요한 주교님이 성모님과 하느님의 품에서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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