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갖는 게 이름이지만 나는 내 이름 ‘김후남’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후남(後男)’이라는 이름은 다음에 꼭 남동생을 보게 해 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집에 딸이 많으냐” “남동생을 봤느냐”고 묻는다. 한마디로 ‘후남’이라는 이름은 촌스럽고, 비인권적인 남아선호사상의 유산인 셈이다.
이처럼 ‘아름답지’ 못한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바꿔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을 만났다. 그 날도 내 이름이 화제가 됐다. 선생님은 내 이름이 ‘별로’라면서 바꾸라고 하셨다.
얼마 뒤 이이화 선생님은 김호정(金昊瀞)이라는 새 이름과 수천(樹泉)이라는 아호를 지어 보내주셨다. ‘호정’은 하늘이 넓지만 고요하여 풍파가 없다는 뜻이다. 수천은 ‘나무가 있는 샘물’ 즉 상생(相生)을 의미한다.
새 이름과 아호 속에는 평소 내가 지향하는 바(상생)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상태(고요함)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혼란과 번거로움 때문에 진짜 개명을 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이이화 선생님께서 주신 이름과 호는 나를 비춰보고 새겨보는 이름으로 마음에 간직할 생각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때 가장 먼저 내미는 것이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은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첫 표식이다. 그러한 이름에 존재의 가치나 소망을 담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듯 하다. 서양철학은 논외로 치고 공자, 노자, 순자 등 동양철학의 개창자들은 이름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개진하기도 했다. 또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을 때 세레명을 가지는 것은 나도 그 사람(성인)처럼 살겠다는 약속 아니겠는가?
김후남 (파비올라.경향신문 특집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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