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면서 서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낀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대통령이 개신교 장로이기에 기독교적 가치의 구현을 눈여겨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선 공약에서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제시한 국정 청사진에도 소외계층을 위한 별도의 ‘액션플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제 대통령’, ‘국민성공시대’, ‘대기업 프렌들리’를 외쳤을 뿐이다. 간혹 따뜻한 사회, 따뜻한 시장 경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따뜻함보다는 언제나 시장과 효율, 경쟁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경제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워 자연스레 그 과실이 소외계층에까지 확산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가 모델일 수 있다.
1980년대 대처 총리는 공기업 민영화, 금융개혁, 노조활동 규제, 인플레이션 억제, 친기업 정책 등 신자유주의식 개혁을 밀어붙여 사회 경제적으로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영국병’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평등주의가 교육을 망쳤다며 중등교육 평준화를 해제하는 등 교육에도 경쟁원리를 도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처의 개혁은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지나치게 승자 독식의 경제 체제를 만들어 계층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성장, 분배, 복지가 선순환(善循環)하는 ‘신발전체제’를 정착시키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으면 양극화 심화에 따른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고, 88만원 세대가 등장했으며, 청년실업이 줄지 않아 2003년부터 20대의 자살이 교통사고를 제치고 사망원인 1위에 올랐다. 통계청에선 최근 전국 상하위 가구의 소득격차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미 빈곤사회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진단도 있다.
이명박 정부를 뒤흔든 촛불시위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려다가 자초한 것이다. 10대 중고생들이 촛불시위에 불을 지핀 것은 숨막히는 교육 현실 때문이었다.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사교육 등으로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오른 학생들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영어 몰입 교육, 일제고사 및 우열반 부활, 0교시 수업, 입시 자율화 등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자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뇌관 역할을 했을 뿐이다. 여기에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판과 대운하 반대 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환율 정책과 유가 인상에 따른 물가고 등으로 경제마저 더 어려워지자 서민들이 가세한 것이다.
촛불시위는 이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장치로 자리를 잡았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순, 효선양 추모 시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대규모 촛불시위다. 앞으로도 국회나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질 것이다.
경제성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소외계층을 배려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만으로는 서민을 보듬을 수 없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한국의 복지 지출 비율은 국내총생산(GDP)대비 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남미의 몇몇 나라에선 극심한 빈부격차 탓에 부유층 납치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납치 산업’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이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가 되기 위해 92년 국회의원이 된 뒤 3년 4개월간 매주 일요일 새벽 주차봉사를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어쩌면 대통령직보다 (장로라는 직책이)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만큼 기독교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이대통령은 최고 경영자(CEO)형 리더십이 아니라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서민 대중과 소통하고 서민의 뜻을 헤아리는 ‘섬기는 리더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장관들의 의견을 듣기보다 대기업의 오너처럼 독선적이었다고 들린다.
다행스럽게도 이대통령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 6.10 촛불집회를 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물가를 안정시키고 민생을 살피는 일을 국정의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다. 이대통령이 기독교적인 가치를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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