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주의(相對主義)자들은 “나의 주장도 옳고, 당신의 주장도 옳다”고 말한다. 그럼 상대주의자들은 “상대주의가 틀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을 파는 사람이 동시에 세상의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를 팔 수 있을까.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은 자신이 들 수 없는 무거운 바위를 창조할 수 있을까 없을까.
네모난 동그라미는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서 일까.
나는 미래에 있을 나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예언할 수 있을까 없을까.
우리는 고통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과음한 이튿날에는 반드시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과음하는 이유는 뭘까.
부처는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볼까.
서태후의 지원을 받으며 서양 세력 척결에 나선 ‘의화단의 난’이 오히려 제국주의의 청나라 침략을 가속화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과 쿠데타를 일으킨 이성계가 내 눈 앞에 지금 서 있다면 난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할까.
중국 패권주의와 미국 제국주의, 쇄국 정책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왜 싸울까. 역사는 진보하는 것일까.
1789년 대혁명 이후 황제를 옥좌에서 끌어내 길거리에서 참수한 프랑스의 그 군중이,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던 그 군중이 새롭게 등장한 나폴레옹 황제에게 열광하고 목숨까지 바쳐가며 유럽 정복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뭘까.
하느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왜 하느님을 원망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을까.
성지(聖枝)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하던 예루살렘 군중이 예수 살해 공범으로 돌변한 이유는 뭘까. 군중은 왜 변덕이 죽끓듯 할까.
가혹한 직장상사를 비판하던 직원이 정작 자신이 상사가 되면 왜 더 가혹해 질까. 며느리는 왜 시어머니를 닮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역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촛불과 침묵, 둘 중에서 누가 국민이고 누가 시민일까. 전경이 먼저 시민을 쇠파이프로 폭행한 것일까, 시민이 먼저 망치를 든 것일까.
사람들은 왜 같은 고향 사람, 같은 학교 출신을 더 좋아할까.
신부님은 모두 같은 신부님인데 왜 어떤 신부님은 시청 광장으로 나가고 어떤 신부님은 나가지 않는 것일까. 왜 어떤 신자는 광장에 나간 신부님을 지지하고, 어떤 신자는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낙태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성향은 보수일까 진보일까. 그럼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가톨릭교회는 보수일까 진보일까.
빨강과 보라만 있는 이 시대에 다양한 색깔을 되찾아줄 프리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교회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시간 한국교회 신앙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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