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에게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은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전설 그 이상의 존재다. 하지만 매년 프랑스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존경 받는 인물’에는 그들이 그토록 환호하는 지단이 첫 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수십 년간 1위에 꼽혀왔던 사람은 바로 한 평생을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라 여기며 살다 지난해 선종한 아베 피에르(Abbe Pierre) 신부였다.
‘행동하는 성자’,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 ‘빈자들의 아버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녔던 피에르 신부의 삶과 신앙은 의외로 단순한 면이 있다. 그의 삶이 지향했던 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49년 설립해 현재 전세계 40여 개 나라에 300곳이 넘게 퍼져있는 ‘엠마우스 공동체’다.
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설립된 이 공동체가 지닌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면모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엠마우스 공동체에서 일하는 이들은 공동체를 찾아오는 그 누구에게도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는 물론 ‘우파인지 좌파인지’, ‘보수인지 진보인지’ 묻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이렇게 질문할 뿐이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쉴 곳이 필요하십니까?”, “배가 고프세요?”
그 어떤 거대담론이나 높은 이상으로 다가서지 않고 필요로 하는 이에게 그 필요가 되어주는 존재가 엠마우스 공동체였던 것이다. 피에르 신부에게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란 고차원적인 구원론을 설파하거나 은총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이였다. 나아가 이웃의 고통을 못 견뎌하기에 같이 아파하는 참 이웃이었다.
우리는 이런 삶을 이미 2000년 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서 발견한다. 제자들이 일궈낸 공동체는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위로를 전한 존재였다. 죄인 줄도 모르고 그 죄에 물들어 죽어가고 있던 백성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해준 공동체였다. 한 마디로 ‘사랑은 입에 있지 않으며 이웃을 위해 움직이는 것’임을 온 몸으로 실천해 보였던 공동체였던 것이다.
피에르 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전해주고 있는가. 혹시나 딴 나라의 얘기,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들이 이런 목소리마저 뒤덮고 있는 건 아닌가. 실제 이런 염려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배금주의를 뛰어넘어 싸움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가치관으로 나타나는 세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에 마음을 맡긴 사람에게 나 이외에 다른 존재는 모두 적이거나 이용가치를 지닌 대상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웃은 없다.
교회 안에서마저 이런 가치관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찾아온 이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접하기도 전에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 따지는 모습, 먼저 ‘우파인지 좌파인지’로 편부터 가르는 모습, 은근슬쩍 ‘가난한지 부유한지’를 살피는 모습…. 그리고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모두 자신과 자신이 속한 편이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실지 모른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느냐?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느냐?”(마태 25, 35~36 참조)
그리고 덧붙여서 “너희들 그리스도인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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