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촛불 집회가 한창이었던 서울 광장에서 법정 스님을 만났다. 좀처럼 산문을 나서지 않는 분이신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가만히 계실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법정 스님을 보는 순간, 스님의 책 ‘무소유’가 떠 올랐다. 스님은 아마도 지금의 이러한 사태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의 몰염치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질타하고 계시지 않을까?
무소유(無所有). 나는 이 말을 산중의 선사들이나 지키는 계율쯤으로 여기고 살았다.
“그 사람들이야 챙길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 걱정, 취직 걱정, 노후 걱정… 그런 걱정 안해도 되니까 ‘무소유’일 수 있겠지?”
나도 산중에서 푸른 나무나 보고 산다면 무소유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 밖에만 나서면 맛있는 음식, 예쁜 옷, 예쁜 구두가 나를 유혹하는데 어찌 그것들을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무소유’가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더 예쁘고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저 일렁이는 촛불 속에서 참회문을 바치며 백팔배를 올리는 스님들을 보자 내 마음이 콕콕 쑤셔왔다.
“남보다 더 가지려는 내 마음을 내려놓으며…” 79번째 절을 올립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광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가는데 ‘대박 빅세일 무조건 1만원’이라는 광고가 나를 유혹했다. 정말이지 지금 안사면 후회할 것 같은 옷들이었다. 이빨을 꽉 깨물었다. ‘무소유’는 아니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가지자. 지금 내 옷장에는 평생 입어도 다 입지 못할 옷들로 가득하니까.
김후남(파비올라.경향신문 특집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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