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태아성감별과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은 현 국내 생명윤리의식 수준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이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태아 성감별 고지를 무조건 금지한 것은 의료인의 직업활동 자유와 임산부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조항(개정 의료법 제20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태아성감별 등에 관한 논란은 지난 2004년과 2005년 변호사와 개인병원 의사가 각각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비롯됐다. 헌재는 결정을 앞두고 공개변론 등을 가졌고 지난달 말 최종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태아 성별 고지 금지는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방지함으로써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전면 금지하는 것은 의료인과 태아 부모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헌재의 결정 논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논리와 원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결정은 임신 후기에도 공공연히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반쪽짜리 결정이다. 의료계와 여성계 등은 우리 사회의 남녀 성비 불균형이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지 금지 철폐의 근거로 든다.
하지만 둘째와 셋째 자녀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2006년 기준 남녀 아동 성비는 셋째의 경우 여아 100명 당 남아 121명으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태아 성별 고지가 허용된다면 골라낳기식 낙태가 늘 것은 뻔한 이치다.
부모가 태아 성별을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별 고지가 만의 하나 낙태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면 이를 금지하는 것이 생명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의 기본 정신에도 맞다. 또 생명을 지켜야 할 의료인이 성감별이 낙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고서도 행하겠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보건복지가족부 통계로 2005년 행해진 34만 건의 낙태 가운데 2500여 건이 태아의 성이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감별을 금지하고 있어 그나마 낙태가 억제되고 있다”는 양심적인 의료인들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헌재의 판결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성감별 시기를 낙태가 도저히 용인되지 않는 시기까지 최대한 늦추고 태아 생명을 위한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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