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식량계획(WFP)이 최근 한국 정부에 6천만 달러에 이르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공식 요청해오면서 남북 관계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주도해 온 유엔 기구인 세계식량계획은 북한 인구의 30%에 가까운 620만 명의 취약층을 대상으로 다음달부터 15개월 동안 긴급 구호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장이 지난 23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사정이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던 1990년대 중반과 같은 위기는 아니지만 급격한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를 비롯한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대응은 마치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새 정부 출범 초기 대북 지원 기회를 놓침으로써 이후 남북 관계 악화를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이산가족 상봉, 조선산업단지 협력, 베이징 남북 공동응원단 사업, 백두산 관광 등이 줄줄이 중단되거나 무산된 상황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에는 북한에 옥수수 5만톤을 제공하겠다며 협의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금강산 피격 사건 같은 돌발적 성격이 강한 사건이 쉽게 풀리지 않는 데는 나빠진 남북 관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남북이 모두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올린 남북 화해 협력의 성과를 지난 몇 달 동안 잃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그 어느 분야보다 부침이 심한 남북 관계 속에서 숱한 고비와 장애물을 지혜롭게 헤쳐온 천주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의 움직임이 수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듯한 작금의 모습도 현재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을 보여준다.
지속적인 인도적 지원은 남북 관계를 안정시키고 우리 민족이 한 형제라는 일체감을 키우는 토대다. 국내외의 여론이 좋지 않을 수 있으나 정치적 문제와 인도적인 사안은 구분하는 게 남북 관계가 걸어가야 할 정도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에서 쌓이기만 한 난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도 더욱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목마름이 심한 이에게는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는 한 모금의 물이 나중에 배를 부르게 하는 한 병의 물과 비교할 수 없음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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