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미사에는 공동체 가족들이 대부분 파카 점퍼를 입고 나왔다.
‘산위의 마을’은 한 여름에도 저녁이면 뒷산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로 긴 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연중 열 달 정도는 난방을 하고 지낸다.
유난히 무더웠다던 금년 여름도 물러가고 있다. 이맘때면 본당에서도 주일학교 캠프 등 한여름의 들뜬 행사들도 마무리되고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으리라.
산위의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약 10Km 정도의 보발천 계곡을 지나야 한다. 쾌적하고 깨끗하여 계절마다 갈아입는 풍경의 색깔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렇다고 이름 날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5년 전 산위의 마을이 시작될 때만해도 한 여름에도 텐트 하나 볼 수 없었는데, 해마다 하나둘 늘어나더니 올해에는 아무 시설도 없이 불편한 외진 계곡에 제법 많은 야영꾼들이 찾아왔다.
차량이나 행색을 보면 돈 없고 비싼 콘도에 갈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름난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도 여전하겠지만 경치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한적하고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거나 역사 문화적 의미가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고향’ 이란 변함없는 어머니와 인심이 있어야 고향이듯이 말이다.
뉴타운 개발 시대를 지나 새 신도시를 물색한다느니 하면서 경기 부양과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이다. 국제중학교니 특목고 증설이니 야단이다. 경제가 중요하고 특별한 자녀 교육이 필요해서 그런 대통령을 뽑았겠지만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각성할 바는,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한 일류 교육으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이제 항구 어귀에나 묶여있는 낡은 폐선일 뿐이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국가 상업주의적 대형 마트의 충실한 고객 노릇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를 시대의 징표를 보는 거울로 삼을 수 있다.
공동체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래서 시대의 징표를 드러내는 구원의 성사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는 ‘인간이 참된 행복과 조화로운 삶을 얻는데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세계 공동체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경제문제, 즉 빵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찾는데서 비롯됐다. 노동력의 자치와 무소유의 삶을 공동체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거의 성공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산업 선진국에서 경제적 풍요의 시대를 열자 이번에는 자아상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명상의 방법을 매개로 한 영적 공동체 운동이 종교와 뉴에이지 계열에서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미국의 인민사원, 라즈니쉬 열풍, 일본의 야마기시즘, 옴 진리교, 한국의 단학선원 같은 것도 그런 시류의 소산이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전 세계적인 정보 산업화와 급속한 기술 발전에 따른 소비상품의 제조와 원료 조달, 폐기물에 의한 영향으로 지구 환경이 몸살을 앓게 되었다. 식량, 사료의 대량생산과 식품첨가물 등에 의한 유전자적 변형과 이상질환의 증가로 인간과 생태계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런 시대를 거치며 나타난 공동체들은 어떤 동기와 기반을 가졌건 필수적으로 생태 환경을 존중하고 살리는 삶을 소명으로 병행하게 된다. 이런 전사(前史)로 60년대 이전에 시작된 공동체는 수세식 화장실과 화학비료도 사용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환경문제가 심각하기 이전 시대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공하여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목표였다. 이제는 삶의 질을 찾아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나 자신이 행복하되 타인의 행복까지 존중하며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추구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조화로움 가운데 최고의 조화를 가진 스승은 바로 자연이다. 그래서 공동체들은 자연이란 스승 속에 묻혀 자리 잡는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참된 행복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신 말씀은 가르침이 아니라 믿는 이에게는 정말 그렇게 되는 능력이다. 맹목적이거나 천박한 목적을 가진 부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세상 사람들조차도 욕심 없고 작은 삶을 찾고 있는데 하물며 신앙인으로서야 말해 무엇 하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징조에서 시대의 뜻을 알라.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루카 12, 561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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