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났다. ‘쉼’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휴가도, 한 여름밤을 넉넉하게 채워준 올림픽의 감흥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각본 없는 드라마 올림픽이 열려 더없이 행복한 8월이었다.
9월이다. 올 9월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이 기다리고 있다. 고향을 찾아 뿌리를 찾아 다시 한 번 민족 대이동이 이뤄진다. 부모님과 고향 어르신들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는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뿌리를 이때만큼은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인간에게 핏줄과 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조들을 잊지 않고 공경하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인 우린 오늘날 한국교회를 있게 한 뿌리를 기억하고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 크고 작은 박해에 맞서 하느님을 위해 신앙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바로 신앙의 선조이자 뿌리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후 한국교회는 순교 선조들의 피와 희생 위에 견실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신자라면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듯하다. 만약 내가 박해당시 신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분들처럼 죽음의 두려움과 모진 고초 속에서도 “죽어도 하느님을 믿겠소”라고 외치며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고백컨데 내 경우라면 눈앞에 서슬퍼런 칼날이 번쩍이고, 동료들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극한의 공포와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부끄럽고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신앙생활을 불과 얼마 하지 않았던 수만 명의 순교자들이 장하게 견뎌낸 일이건만 수십 년을 신자로 살아온 필자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자랑스러운 103위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및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에 매진하며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교회 순교자의 후예로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가요 중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한국교회를 빛낸 수많은 순교자들’이란 말로 대신하고 싶다. 이 땅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신앙선조들이야말로 한국교회를 성장, 발전시킨 뿌리이기 때문이다.
순교의 역사였던 만큼 우리나라 곳곳에는 그 역사의 현장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곳을 성지라 부른다. 성지를 방문할 때면 늘 가슴 한 켠이 ‘짠’함을 느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밀려온다.
목숨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에 대한 경외심, 그 분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 세속에 찌든 심신에 새로운 신앙의 에너지가 샘솟는다. 성지야말로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 우리 모두 그 뿌리의 현장을 찾아 굳건한 신앙의 활력과 힘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2008년 오늘, 삶의 현장엔 신앙을 지켜내면서 살기엔 너무도 많은 유혹과 걸림돌이 있다. 또다시 맞는 순교자 성월, 순교 선조들에게서 배워 실천해야 할 덕목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지 진지하게 성찰해보길 간절히 기도한다.
“위대하신 이 땅의 순교자들이여, 한국교회와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