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뿔났다! 예쁘고 앙증맞게 솟아난 귀여운 뿔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무소의 뿔이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은 더 이상 폴짝폴짝 뛰어와 품에 쏙 안기던 그런 딸이 아니다. 어쩌다 포옹 한번 하려고 하면 엉덩이를 쑤욱 뺀다. 뽀뽀도 예전의 진한 ‘쪼~옥’이 아니라, 그냥 ‘쪽’이다. 퉁퉁 거리며 짜증내는 일이 잦아지더니, 최근 들어서는 동생과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유치원 다닐 때만해도 “커서 수녀님 되라”고 하면 “예”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주장’이 생겼다. 수녀님이 되기 싫단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던 딸이 이젠 “이것을 해라”고 하면 “나 지금 바빠요”한다. 조금만 야단을 쳐도 입이 툭 튀어 나온다. 부글부글….
딸을 내 맘대로 하고 싶다. 강요하고 싶다.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신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생각을 딸에게, 아내에게, 사회에 강요한다. 오직 내 말만이 절대적이다. 포용이 없다. 당연히 입 튀어 나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과 반목이 일어난다.
문제는 인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이 허상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들만이 불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솔개는 불타는 나뭇가지를 발톱으로 쥐고 옮겨 의도적으로 불을 일으킨다. 먹이를 은신처에서 몰아내 사냥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18세기 탐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남쪽 연안의 타스마니아(Tasmania) 섬에 도착했을 때, 불 지피는 방법을 모르는 부족도 있었다.
나의 앎, 나의 지식, 나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것은 만용이다.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Nicolaus Cusanus)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말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겸손해야 한다.
요즘 한국 사회가 걱정스럽다. 자기 주장이 넘친다. 나만 안다고 한다.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한다. 겸손해야 할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뿔은 보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뿔부터 본다. 무지를 고백할 수 있는 경외심이 필요하다.
신만이 모든 것을 안다. 그래서 인간에게 진리를 선물했다. 하지만 진리에 이르는 길은 강요하지 않는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하기에 강요한다 하지만, 신은 사랑하기에 강요하지 않는다. 신이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고통을 받더라도 그 고통은 신비로 남는다. 고통의 신비(십자가) 다음에 영광의 신비(부활)가 약속되어 있다.
# 세상 살다 보면 뿔나지 않으려 해도 뿔날 일이 수두룩하다. 각자의 뿔을 겸손히 고백하고, 이웃의 뿔을 보듬어야 한다. 공생의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포용의 미덕이 아쉽다. 모르는 일이다. 뿔은 나 혼자 났을 수도 있다.
‘엄마가 뿔났다’는 말은 ‘엄마가 나빠졌다’는 말이 아니다. 딸의 뿔도 걱정스럽게 볼 일만은 아닌 듯하다. 성장통의 하나일 뿐이다. 딸의 뿔도 이왕 난 뿔, 혼자서 가겠다는 아집으로 가득한 그런 뿔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뿔 가진 이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 안에서 겸손히 성장하며,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지혜의 뿔이었으면 좋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