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으로 시작해 대지주가 되는 왕룽 일가의 역사를 그린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여류작가 펄벅(Pearl S. Buck)은 한국인의 삶의 모습에서 서양과는 다른 우리만의 따뜻한 심성을 발견하고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이름을 지어 부를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느 시골길을 가다 우연히 농부가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 농부는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가면서 자신도 지게에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우리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풍경에 펄벅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이 지고 있는 짐과 지게마저 달구지에 싣고 자신도 달구지를 타고 편하게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서구적 사고에서 보면 이상하게까지 여겨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리라는 점에서 그가 받은 충격이 짐작 가기도 한다.
그의 눈에는 소의 짐을 덜어 함께 나눠 지고 가는 농부의 모습이 집에서 기르는 짐승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우리네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짐승이 느끼는 감정과 기분까지 배려하면서 살아온 민족이다. 그러니 하물며 가족과 이웃,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왔는지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를 돌아보면 불과 수십 년 전 우리의 모습에서 얼마나 나아가 있는지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웃이나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이해는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대신 서구식 합리주의로 포장된 개인주의가 모든 행동의 척도가 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모습은 교육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자기 자녀가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봤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가 폭력까지 마다치 않는 학부모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자유와 행복을 최대한 누리는 것을 모토로 한 개인주의는 교회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본당 중고등부나 청년 미사 때 참례하는 신자 수가 평소보다 확 줄어들면 시험 시즌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는 사목자의 목소리에서는 이제 씁쓸함마저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 됐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본당에서 봉사할 수 있는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복사 구하기도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도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미사라도 드리고 싶다는 아이를 붙들고 “미사는 대학 들어간 후 실컷 볼 수 있으니 지금은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합리적인(?) 행위는 대부분 “우선 내가 잘 되고 봐야 남도 도울 수 있다”는 ‘건전한’(?) 개인주의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이기주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교회로, 우리 가정으로 되돌아온다.
몇 년 전, 한 의사의 아들이 아버지 병원 앞에서 칼에 찔려 죽은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누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지 않았던 의사는 이튿날 경찰 연락을 받고서야 자신의 아들이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병원 문을 두드리다 과다출혈로 죽게 된 것을 알게 됐다.
그 의사는 자신의 말대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진실로(?)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일까. 주님만이 아실 일이다.
우리는 진실로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 또한 주님만이 아실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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