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화두는 생명과 환경으로 집약된다고 미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지구의 생명 보존체계는 인간에 의해 손상되고 유린당하고 있다. 지하수와 토양이 방류된 살충제와 유독물질에 의해 오염되고 있으며, 수천 년 넘게 지속되어온 농지와 산림이 개발업자들에 의해 함부로 훼손되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는 곧바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 출산과 먹거리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에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생태여성주의(에코 페미니즘, eco-feminism)를 소개하려 한다.
생태 여성주의는 생태학과 여성주의가 만나 생겨난 말이다. 어원적으로 생태학(ecology)라는 용어는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집을 잘 돌보는 일, ‘가계 살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학문으로서의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1868년,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Ernst Hackel)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생태학을 ‘살아있는 존재와 유기적, 비유기적인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결국 ‘복거(卜居)’와 ‘섭생(攝生)’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탱해 나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편 여성주의(feminism)는 성차별의 원인과 구조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론이다. 과거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는 사회 각 부분에서 여성을 억압, 차별함으로써 여성을 빈곤한, 종속적인 제2의 성으로 내몬 것이 사실이다.
여성주의 이론은 이러한 점을 비판하면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되 차별없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바로 이러한 여성학적 문제 인식과 생태주의가 결합되어 생태여성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을 분리하고 배제시키는 가부장적 세계관과 사회구조가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자연파괴를 가져오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파악하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인간사회와 생태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대안문화를 제기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환경문제는 여성문제와 마찬가지로 지배와 복종이라는 남성중심주의적 이분법적 문화에서 연유한다. 다시 말해 자연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태로 보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주의적 시각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게다가 환경문제로 인한 생리적, 생태적, 사회적 피해는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남성의 몸에 비해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순환되고 소비되기보다는 축적되는 경향이 강하므로 유해환경물질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개발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면, 전통적으로 물과 음식물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던 여성들에게 더욱 과중한 노동이 부과될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이 전통적으로 자연 친화적이고 생명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생명의 중요성 및 생명현상과 관련된 사회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더 민감하며 적극적이어 왔다. 그렇다고 여성들만이 이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여성은 유기적 협동관계나 공동작업에 능숙하고, 자연관리자로서의 지식과 기술이 풍부하니 이러한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가족원들에게 올바른 환경의식과 가치관을 심어주고, 자원과 에너지의 절약 및 쓰레기 재활용 등과 같은 환경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여성들이 앞장서 보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남성중심적, 발전지향적, 경쟁주의적 가치관이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은 또 무엇인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경쟁으로 인해 타인을 소외시킴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남성과 여성은 하나일 때 하느님의 참다운 창조물이 된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며, 사람들끼리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자.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머물지 말고 한 가지라도 행동으로 실천해 보자. 그러면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해주 (크리스티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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