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은 때려야 소리가 난다. 배터리를 등에 업은 트랜지스터가 그랬었고, 채널을 손으로 돌리는 TV도 그랬었다. 낡은 전자제품이 고장이 나면 무조건 두들겼던 것처럼 나의 머리도 어떤 힘의 충격을 가하면 생생하게 되지 않을까.
요즈음 부부 싸움도 ‘잊어버리는 일’에 대하여 자주 벌어지곤 한다. 이러한 망각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매일 성경 기도를 하고 또 다시 읽으면서 줄을 긋는다. 그러나 아침에 마음에 넣어 둔 복음도 잠시, 나를 무시하거나 홀대를 한다 싶으면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 참을 줄 모른다.
나는 검은 수단을 입은 김 바오로 신부님의 인자한 모습이 떠올랐다. 성당 마당에서 일일이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손을 잡아주시는 본당 신부님. 내가 본 신부님은 항상 웃으셨으며, 부드러운 눈매로 늘 반기는 진솔한 모습이었다.
처음 본당에 부임했을 때 까마득한 수십 년 전의 내 모습을 영상을 보듯 기억하고 있었다. 소외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힘든 활동이 두려웠던 요즈음의 나에게 신부님의 기억은 낡음에서 새것으로 전환되는 것 같은 활력을 주었다.
내가 주일 미사에 빠졌을 때에 한번이라도 기억해 주고, 왜냐고 관심을 주는 신부님이었으면 했다. 내가 고통과 아픔, 경제적 시련으로 힘들어 할 때, 얼굴 안색만 보고서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 보는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었으면 했었다.
그런 신부님이 본당에 오셨다. 신부님, 우리 신부님!
오래된 라디오처럼 볼품없는 나에게 따뜻한 악수를 건네주는 신부님. 신부님은 수단에 매달린 수 십 개의 단추처럼 사랑을 주렁주렁 품고 있었다.
이소애(체칠리아.시인)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