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오른다는 것은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장백산)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며 감격하기도 하였고, 장백폭포 쪽으로 산을 올라 천지에 손을 담그고, 중국 공안의 감시를 피해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내 나라 내 땅을 다른 나라를 통해 바라보고,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언젠가는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백두산을 방문하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소망이 강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운 좋게도 평양에서 백두산 삼지연공항을 거쳐 백두산을 세 번 오를 수 있었다.
첫 번째 방문 때는 10월 초순임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에 눈보라가 심해 천지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비록 천지는 볼 수 없었지만 민족의 영산을 내 땅을 통해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기회는 8월 중순이었다. 운무가 가득한 백두산 정상에 서서 한없이 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사라지기만 기다렸다. 어느 순간에 운무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선명한 천지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 다시 구름 속에 묻혀버렸다. 일순간에 본 천지였지만 그 맑고 웅장한 모습은 영상처럼 남았다.
삼세 번이라고 했던가.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평양, 묘향산, 백두산을 방문하게 됐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118명이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의 한결 같은 바람은 백두산에 올라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9월 28일 아침 세 번째 백두산 순례를 위해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평양의 날씨는 쾌청했지만 변화무쌍한 백두산의 기후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평양을 출발한 비행기는 동해 쪽으로 갔다가 백두산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비행하자 우리 눈에 백두산이 들어왔다. 며칠 전 백두산에 첫 눈이 내려 백두산 정상은 글자 그대로 흰머리(白頭)였다.
삼지연공항에 내려 작은 버스를 타고 1시간30분을 달려 백두산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은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은 없는 고요 그 자체였다. 버스에서 내려 1000m 정도 더 올라가 백두산의 최정상인 2745m의 장군봉(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부른다)에 우뚝 섰다. 여기가 한반도 최고봉이다.
백두산의 최정상에 서서 바라본 천지의 웅장하고 맑은 물은 눈을 시리게 했다. 백두산에 대해 해설해주던 강사는 그날 날씨가 365일 중 최고의 날이라면서 이번 방문객들은 모두 좋은 분들만 오셨다고 치켜세웠다.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간직하고 내려와 삼지연 근처의 베개봉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날 저녁 호텔에서 신자들끼리 모여 감사의 미사를 봉헌했다. 사제로서 매일 드리는 미사이지만 백두산에서 봉헌한 미사는 더욱 뜻 깊고 감격스러웠다. 호텔 음식은 주로 감자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그 담백한 맛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백두산 천지, 은혜로운 미사, 맛있는 식사 외에 또 감탄한 것은 백두산에서 바라본 별들이었다. 하늘은 온통 별들의 향연. 태어나서 제일 아름답고 많은 별들을 백두산에서 만난 것이다. 천지와 별, 아름다운 미사와 사람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북한을 방문한 3박4일 동안 북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6·15와 10·4 공동선언을 이행해야 합니다. 먼저 정권들이 해놓은 것이라고 해서 북남 수뇌간 합의를 무시하고 새로 하자는 사람들과 어떻게 믿고 대화를 합니까?”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이 서명한 합의서를 부정한다는 것은 혁명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 국제관례다. 특히 10·4 선언은 남북한이 다시 만나 할 것과 못할 것,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다시 협의해서 논의하면 되는 것을 뭘 하러 필요 없는 말로 상대방을 자극하고 파탄으로 몰고 가는지 모를 일이다.
대북정책의 문제는 좋고 싫고의 감정 차원에서 진행하면 안 된다. 지금의 여당과 이명박 정부가 야당시절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대북문제에 반대하고 비판할 수는 있었겠지만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으로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이 ‘비핵·개방·3000’이었고, 그것을 다시 다듬어 내놓은 것이 ‘상생·공영 대북정책’이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던 보수학자는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 대북정책’은 정책도 아니다”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생각한다. 왜 남북한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원수보다 더한 원수로 살아야 하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왜 남북관계에서는 예외인가? 남북문제에는 하느님의 가르침도 없고, 이성도 없다.
답답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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