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실은 전쟁터와 같다. 환자들의 비명소리, 구급차가 도착하는 소리,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 했다. 조금 전에 세상을 원망하는 듯이 고함을 지르던 환자의 얼굴에 흰 포를 덮는다. 흰 포가 싸늘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고성뿐이었을까.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말을 하고 떠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생각났다. 마치 안방에서 건넌방 문턱을 밟고 건너가는 것 같은 편안한 죽음은 나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확신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서거하실 때 교황님은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던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살아 있는 자에게도 행복을 기원하는 너그러움은 성스러움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또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작고한 오규원 시인도 생각난다. 작년 1월이었던가. 최후에 남긴 4행의 짧은 시였다. 병실에서 제자의 손바닥에 손톱으로 꾹꾹 눌러 써 준 시였다. 제목이 없는 그 시에는 참 멋진 향기가 묻어 있었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인가. 나는 오규원 시인이 작고한 후에 서점으로 달려가서 시집을 모두 샀다. 그리고 단숨에 읽고 또 읽었다. 그가 사용했던 언어들을 습득해 보려고 지금도 읽고 읽는다.
곱고, 뛰어나고, 훌륭하고, 성스럽고, 위대한 말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인위적인 말이 아니라 내 가슴에서 묻혀 나오는 향기가 있는 말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셔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소애(체칠리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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