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통 교회론과 마찰을 일으키며 논란을 빚었던 한스 큉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교회는 부패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부패할 뿐이다”고 말했다.
교회는 흔히 살아있는 유기체에 비유된다. 교회는 살아있다. 사람의 손과 발이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가졌듯이 교회도 마찬가지다. 각 지체(肢體)는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있는 유기체인 교회(敎會)의 생명을 도모한다.
교회가 살아있는 몸이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머리와 각 지체의 구별된 기능과 역할을 드러낸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지체의 고유하면서도 각별한 기능들에 대한 존중이다. 머리는 물론이요 손 발 어느 것 하나라도 없이는 온전한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가 없다.
각 지체들의 유기적인 협력과 조화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모든 역할과 기능을 아우르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사람으로 치면 정신, 혼(魂), 영(靈)의 능력이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교회는 신비다.
느닷없이 ‘교회론’ 운운한 것은 한 지인의 딱한 사정 때문이다. 수도자가 수장(首長)으로 있는 기관에서 일하던 그 이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가끔 듣던 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쯤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긴 한 모양이다.
동반 퇴직한 이도 있다는 둥 그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는 둥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이 심상찮다. 안다는 그 이가 한참 아래 조카뻘인걸 감안해 어린 나이에 욱하는 성질 못참고, 세상 물정 모르는 탓이라고 여기고는 있다.
문제는 그 일로 한동안 성당에 발길을 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한때 감정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그런데 영 찜찜한 게 가시질 않는다. 내막을 알고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대신 그에게 글 한토막을 보냈다.
“교회에서 상처를 입었을때 우리는 교회를 거부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계속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교회는 싫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교회뿐 아니라 예수까지 잃을 수 있다. (중략)
하지만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다. 그런 교회에 용서를 구할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하고 있다. 교회를 ‘저기 어디에’ 있는 ‘무엇’으로 보지 말고, 우리를 포함하여 모자라고 나약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비틀거리는 공동체로, 그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장소로 봐야 한다”(헨리 나웬, ‘나그네를 위한 양식’ 중에서).
이런 글도 덧붙였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 교회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해왔다. 그것은 교회가 수차례 탈선할 경우 비판을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당황하지 말고 결정적인 고마움을 가진 채 교회의 과거를 떠맡는 것이고, 확실한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러나 결국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교회의 현재에 참여하는 것이며, 온전히 진지하게 그리고 책임있게 그리고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황폐감을 가지면서도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는 가운데 교회의 미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다.”(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세계 신학을 향하여’ 중에서)
운좋게 눈에 띈 이 글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런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가을, 차라도 한잔 나누며 상한 마음을 달래줘야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