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위령성월이면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노동자 전태일을 떠올리게 된다. 인천교구 부천 가톨릭노동사목 소임 중에 만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길 기도해왔기에, 같은 지향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그를 기억한다.
하느님은 일하신 후 늘‘보시니 좋더라’(창세 1장) 하셨다. 이렇듯 모두에게 노동이 즐거운 세상 되길 기도했던 그를 기억한다.
1970년 11월 13일, 같이 일하던 청소년들을 가족처럼 소중히 대했던 노동자 전태일은 소외받는 고달픈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바라며 죽어갔다.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개신교와 천주교는 추모행사를 함께 열면서 한국 교회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을 외면했다는 자성을 했다.
참으로 그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는 말씀 그대로 살다간 이였다.
얼마 전, 필자는 이 사회가 또 한 사람의 ‘전태일’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2005년 7월부터 4년째 ‘원래 일자리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부르짖는 기륭전자의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이야기다.
봄부터 릴레이 단식을 하는 이들 중에 두 노동자는 사경에 이를 정도로 하였다. ‘원직복직’이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90일을 넘게 단식한 노동조합 분회장을 살린 것은 해결의 열쇠를 쥔 회사 사업주가 아니었다. 같이 일하다 쫓겨난 후 발병이 돼 ‘암 투병’을 하다 죽어간 동료노동자였다.
죽기 전까지도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중학생 자녀를 둔 여성노동자였다. 분회장은 동료의 장례를 치르고 와서는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천막농성장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우리들에게 “허기 가시게 드세요”라며 손수 ‘떡’을 내주는 부드럽고 자상한 마음을 지닌 여성이었다.
가족의 생계나 자녀교육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애사심을 가진 분명‘사람’이건만, 2년짜리 또는 몇 개월짜리 일하는 ‘기계’처럼 사용하다가 버린 회사 사용주에게 인격적인 대화를 청하며 ‘복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들! 그들은 지금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아픔을 겪고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오히려 경찰과 용역을 동원해 농성 중인 해고자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등, ‘모두 행복을 확실히 찾는 길!’과는 반대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왜 문제가 이토록 해결되지 않는가?
결국 사업주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사는 이 사회구성원인 우리들의 무관심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욕심이 해고된 이들, 그리고 87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생존권 위협을 가하는 일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왜곡된 경제 중심의 사고’와 ‘생명 경시’ 풍조의 흐름이 안타깝다.
2년 4개월 전 만들어진, 일명 ‘비정규직 보호법’은 바로 내 이웃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불안정한 삶으로 내모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법의 파견제·기간제 확대 수용은 수많은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인력시장으로 내몰아 ‘죽음의 사회’로 만들어가는 비정규직 조장법이다.
생명을 살리고 하느님의 생명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해 운영되는 교회 기관, 병원까지도 고용된 이들에게 빗나간 적용을 유도하는 이 법은 하루 빨리 개정되어야 한다(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참고, 2008. 2. 11).
예수님은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고, ‘법’보다 ‘사람’이 소중함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빛을 밝히고자 설립된 교회 운영기관조차 실상은 가장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이 법에 얽혀 들어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교회 내 기관으로서의 정신을 살려가면서 유지 성장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살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지?
우리는 자신의 일터에서 부당하게 취급받아도 회사를 상대로 마땅한 소리조차 내기 두려워한다. 이렇게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가톨릭교회에서도 긍정적으로 인정한 ‘노동조합’(회칙 ‘새로운 사태’ 34항 참조)을 통해 ‘살려 달라!’고 외친다.
모든 단체가 그렇듯이 ‘한계를 지닌’ 사람들의 모임인 노동조합을 우리 신앙인들부터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면 좋겠다. 비정규직 노동자 여럿이 모여서 내는 소리, 이 절규를 바로 내 가족 친지, 아니 바로 내 안의 울부짖는 소리로 경청하고 신앙인들이 먼저 인격적인 대화의 장을 열어 나가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